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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Nov 27. 2019

내가 내 욕하는 거니까 보지 마세요

자괴감의 산물

- 엄마는?

- 엄마!

- 아빠는?

- 압빠!

- 이모는?

- 임~모!

- 할머니는?

- 함~므니!

- 호수는?

- 아가!

- 호수는 호수지~


어딜 가나 인성이든 능력이든 간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자극받아 성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그냥  먹듯 툭하면 자괴감에 빠져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바로  후진 후자다. 성격 좋은 사람을 보면 ‘나는  저렇게 좋은 사람이  될까’, 능력 좋은 사람을 보면 ‘나는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됐을까' 한다. 친구는 이런 나에게 너무 남들과 비교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자소서에 장점이라고 써낸 호기심이 배신 때리네.


<더콤마에이>는 밑바닥부터 시작한 일이었다. 디자이너 되겠다고 공부는 쳐해놓고 청약통장을 해지해서 연희동에 8평짜리 복합 문화공간 비스무리한 것을 열었다. 그나마 6년 전이라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명함도 못 내밀 꼬라지였다. 3층인데 월세 150이라니 내가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한창 대학강사로 뛸 때라 후배들한테 잔소리해서 받은 돈을 건물주에게 갖다 바쳤다.

그마저도 1 만에 문을 닫았다. 망했다는 말이  맞을  같다. 그러고는 잡지사에 다녀본 적도, 제대로  원고를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덤볐다. 나에게 남은 관심사와 스킬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일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편집을 하는 능력 이전에 네트워크의 문제였다. 섭외가 돼야  하든가 말든가 하지.  듣보잡이었고, 인맥을 구걸하다시피 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만나고, 초대받지 않은 행사에 기웃댔다. 자존심뿐인 묵직한 손가락을 움직여 인스타 댓글을 달고, 낯짝 두꺼운  디엠을 보냈다. 이런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걸 따질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직진 말고 다른 방향은 없었다.


중간에 교수되겠다고 뻘짓만 안 했어도 좀 더 빨랐겠지만, 노력이 배신하지는 않는지 5년이 넘어가니 섭외율도 높아지고 인터뷰 단행본을 출간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 아무리 발버둥 친들 더 높게 더 빨리 날고 기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같은 업계의 누가 뭘 이루어내면 존경보다는 조급함이 신물을 담아 위 속을 맴돌았다. 섭외만 돼도 들떠서 폴짝대던 올챙이 시절은 잊은 지 오래고 나도 출판, 나도 베스트셀러, 나도 글로벌, 나도나도나도!

한참을 스스로 괴롭히고 나면 다음 자아가 나타나 다독임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잖아. 일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아이도 키웠잖아.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나올 거잖아. 아직 젊고(?) 언제든 하기만 하면 되잖아. 병 주고 약 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이만한 셀프서비스가 따로 없다.


욕심쟁이 우후훗은 남 잘 되는 꼴 못 보고 딱히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운 좋게 대박 나기만을 바라는 철부지이지만 나쁜 생각을 구별할 줄은 안다. 경쟁과 상생은 한 끗 차이다. 배는 잠깐만 아프고 정신 차려서 내 할 일이나 잘 하자. 누르고 밟고 구겨도 다시 일어서는 자괴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훌륭한 사람 되냐고, 그냥 아무나 되라던 횰언니가 보고 싶다.


- 나는?

-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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