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감의 산물
- 엄마는?
- 엄마!
- 아빠는?
- 압빠!
- 이모는?
- 임~모!
- 할머니는?
- 함~므니!
- 호수는?
- 아가!
- 호수는 호수지~
어딜 가나 인성이든 능력이든 간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자극받아 성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그냥 밥 먹듯 툭하면 자괴감에 빠져드는 이들이 있다. 응 내가 바로 그 후진 후자다. 성격 좋은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좋은 사람이 못 될까’, 능력 좋은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못 됐을까' 한다. 친구는 이런 나에게 너무 남들과 비교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자소서에 장점이라고 써낸 호기심이 배신 때리네.
<더콤마에이>는 밑바닥부터 시작한 일이었다. 디자이너 되겠다고 공부는 쳐해놓고 청약통장을 해지해서 연희동에 8평짜리 복합 문화공간 비스무리한 것을 열었다. 그나마 6년 전이라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명함도 못 내밀 꼬라지였다. 3층인데 월세 150이라니 내가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한창 대학강사로 뛸 때라 후배들한테 잔소리해서 받은 돈을 건물주에게 갖다 바쳤다.
그마저도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고는 잡지사에 다녀본 적도, 제대로 된 원고를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덤볐다. 나에게 남은 관심사와 스킬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일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편집을 하는 능력 이전에 네트워크의 문제였다. 섭외가 돼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하지. 난 듣보잡이었고, 인맥을 구걸하다시피 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만나고, 초대받지 않은 행사에 기웃댔다. 자존심뿐인 묵직한 손가락을 움직여 인스타 댓글을 달고, 낯짝 두꺼운 척 디엠을 보냈다. 이런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걸 따질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직진 말고 다른 방향은 없었다.
중간에 교수되겠다고 뻘짓만 안 했어도 좀 더 빨랐겠지만, 노력이 배신하지는 않는지 5년이 넘어가니 섭외율도 높아지고 인터뷰 단행본을 출간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 아무리 발버둥 친들 더 높게 더 빨리 날고 기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같은 업계의 누가 뭘 이루어내면 존경보다는 조급함이 신물을 담아 위 속을 맴돌았다. 섭외만 돼도 들떠서 폴짝대던 올챙이 시절은 잊은 지 오래고 나도 출판, 나도 베스트셀러, 나도 글로벌, 나도나도나도!
한참을 스스로 괴롭히고 나면 다음 자아가 나타나 다독임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잖아. 일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아이도 키웠잖아. 이제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나올 거잖아. 아직 젊고(?) 언제든 하기만 하면 되잖아. 병 주고 약 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이만한 셀프서비스가 따로 없다.
욕심쟁이 우후훗은 남 잘 되는 꼴 못 보고 딱히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운 좋게 대박 나기만을 바라는 철부지이지만 나쁜 생각을 구별할 줄은 안다. 경쟁과 상생은 한 끗 차이다. 배는 잠깐만 아프고 정신 차려서 내 할 일이나 잘 하자. 누르고 밟고 구겨도 다시 일어서는 자괴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훌륭한 사람 되냐고, 그냥 아무나 되라던 횰언니가 보고 싶다.
- 나는?
- 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