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박사 수료를 앞두고 있다. <취향집> 출간 후에도 마요네즈를 본격적으로 개시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길어진 가방끈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미뤄둔 마지막 학기였고, 복학과 동시에 새로운 주제를 잡고 소논문을 하나 써내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개강 전부터 교수님과 연구 메일이 오갔고, 나는 6월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이 고통도 6월이면 끝이 나리라. 불안하고 답답한 코로나의 봄을 흘려보내고 여름이 조금 일찍 찾아왔다. 그리고 논문 마감도 열흘 앞으로.
얼마 전 교수님께 <취향집>을 한 권 선물해드렸는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조금 읽어보셨는지 카톡을 하나 보내신다. 나의 글쓰기 취향에 누를 끼칠까 걱정하시면서도 독자층이 더 확실했으면 좋겠더라고 하셨다 (천사인가?). 무엇을 시장에 내보낼 때 타깃을 설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나는 그게 항상 어려웠다. 이것저것 다 담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트렌디해지는 걸 기피하는 탓이기도 했다. 결국 그런 변명으로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들은 어딘가 조금 흐지부지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가.
괜찮다. 다 연습이고 공부다. 이제 생각할 것은 다음이다. 그러니까, <마요네즈>. 고백하자면 그동안 마요네즈 인스타그램 계정에 간간히 포스팅을 하면서 설렘보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거 뭔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름만 바뀌었지 사실상 그대로인데. 나는 또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취향'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적당한 울타리가 싹 세워질 것처럼 착각하면서.
조만간 <취향집> 북토크가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와 기획 메일이 오가면서 잡은 주제는 바로 '취향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되고 비즈니스로 연결되기까지'다. <취향집>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만나온 인터뷰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취향대로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었다. 나는 더콤마에이를 몇 년 동안이나 하면서 이 한 줄로 담아내지 못했나. 남다른 취향을 쌓고 싶은 소비자들이 좋아해 줄 거라 믿었던 <취향집>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거나 이미 만든 사람들, 또는 브랜딩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서점에서의 분류 역시 애매하지만 경영 도서에 들어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비즈니스 이야기를 계속 해왔던 것이다.
온몸의 감각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왜 그걸 못 알아챘냐 하면, 자신이 비즈니스와는 정말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수익구조가 없고, 잘 만드는 것만 할 줄 알지 잘 팔리는 걸 만들 거나 만든 걸 잘 파는 능력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다고 판단된다. 나는 언제나 비즈니스라는 영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에 서서, 돈 이야기를 꺼낼 때면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제는 비즈니스라는 걸 해보고 싶다. 2014년부터 담아온 인터뷰들처럼 나도 내 취향을 비즈니스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환영할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아무나 읽을 수 있는, 아무나 걸리기만 해라 하고 매대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모두의 이야기 말고,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되고 힘이 되는 '취향이 비즈니스가 되는 이야기'.
딱히 필요가 없어진 학벌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봄이었는데, 교수님의 카톡 하나 받기 위한 운명의 장난이었나 하고 조금 드라마틱한 시나리오를 써본다. 하지만 지인들은 언제나 칭찬일색이었지 이렇게 콕 집어서 단순명료한 피드백을 준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도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결정적인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In conclusion, 마요네즈는 취향잡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프트 비즈니스 매거진'을 표방하기로 한다. 사적이고 부드러운 일 이야기. 비즈니스의 '비'자도 모르는 내가 비즈니스 매거진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우리 같이 공부해요.
From taste to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