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나는

Mayo Daily - At Home with Kinfolk

by 룬아

3월쯤만 해도 꼼짝 않고 기다리면 이 카오스가 지나가겠거니 했다. 당시 매우 큰 스트레스 중 하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웃어도 좋다). 넌 출근하면서 테이크아웃이라도 하지, 몇 주째 집에 처박혀서 카누나 타야 하는 기분을 알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날 남편과 다투며 말했고, 남편은 다음날 회사 근처 카페에서 드립백을 사 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신선한 커피의 향이 지나간 날들의 사치를 상기시켜주었다. 비단 커피만의 문제였을까. 좀비는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이건 기껏 도망 다닐 수도 없다고 불안에 떨었다.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건조하고 긴박한 방송을 들으며 정말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잖아,라고 생각한지도 벌써 반년이 넘어버렸다. 영상 통화량이 늘어나고 현관 입구에는 항상 마스크가 구비되어 있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옷 소비가 줄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이지만. 나는 옷을 정말 좋아한다 (뭐 신발도 좋아하고 가방도 좋아하고 보석도 좋아하고...). 원래도 좋아했지만 육아를 시작하고 인터넷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하면서부터 관심이 부쩍 늘었다. 아이가 태어나 28개월을 채우는 동안 나의 옷장도 차곡차곡 채워졌다. 우리나라는 하필 또 계절이 네 가지나 돼서 더운 바람 찬 바람 불 때마다 입고 싶은 옷도 바뀐다. 하지만 외출이 줄어들고 자연스레 패션쇼도 줄어들었다. 뭐야, 그럼 내가 그동안 쓴 돈은 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였나?

가까스로 잡았던 약속들이 취소되고, 기껏 하는 외출도 아이와의 공원 산책 정도였다. 도통 재미가 없어서 아끼다 똥 될 옷을 하나씩 꺼내 입기 시작했다. 떡볶이를 사러 가는 길에도, 친정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도 매일 다른 옷을 입었다. 금목걸이를 두르고 책상 앞에 앉았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나를 위해 차려입었다. 순수하게 즐거웠고 나의 치장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기뻤다. 종종 죄책감을 안겨주던 소비를 멈출 이유가 없어졌다(?).


다음은 운동. 올해 초에 도전한 홈트는 2주 만에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마침 동네에 그럴듯한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오픈했다. 돈 벌면 등록해야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등록해야지, 시간이 생기면 등록해야지. 하지만 셋 중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몸에 이어 정신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목구멍에 울컥,이 여러 번 걸리고 나서야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엄마가 아이를 봐주는 날, 친정집에서 나와 양재천으로 들어서면 대략 오전 11시쯤이 된다. 십여 년 전 접질린 발목이 아파 약국에서 보호대를 하나 사서 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크게 들으며 그저 빨리 걷는 것에만 집중해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는 우울을 떨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모두 신체 어딘가를 움직인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괜히 시간이 나서 산책하고 그러는 게 아니다. 운동은 몸이 아니라 정신을 위한 것이야.


마지막은 혼자 놀기. 나는 혼자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나서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면 남편과 교대로 보고 왔다. 그러니까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두 번 정도 해봤는데 영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나는 그게 뭐든 간에 누군가와 함께, 그 자리에서 즉시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는 외부에서 누군가와 여유롭게 무엇을 즐기는 행위의 전반이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불금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대신 침대에서 넷플릭스를 켜거나 책을 편다 (글을 쓰면 쓸수록 코로나는 육아와 근접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경험이 있다면 단출히 혼자 나선다. 이번에는 혼자 전시를 예약하고, 혼자 관람을 마치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밥을 먹었다. 이것도 몇 번 해보니 썩 나쁘지 않다. 나의 욕구 외에는 신경 쓸 것이 하나도 없다. 친구는 배가 고플까? 몇 시에 만나야 하지? 어디를 가면 좋을까? 같은 질문들이 사라졌다. 밖으로 도느라 살필 틈 없던 내 안의 내향성이 고개를 든다. 좋든 싫든 조만간 내향인들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공유'에서 큰 기쁨을 느끼기에,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영상을 찍어왔다. 디자인 공부한 게 영 허튼 짓은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떠들었다. 조만간 나의 소비 카테고리가 패션에서 인테리어로 옮겨가겠구나 하는 위기감과 설렘을 느끼며.


본격 전시 관람 대행 콘텐츠

https://youtu.be/hBe93enbm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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