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진심

[앤틱 수국] 인터뷰

by 룬아

[Antique Hydrangea / 앤틱수국]

꽃말 : 변덕, 진심


_ 제가 본 이력서 중 가장 화려해요. 간단하게 설명이 될까요?


_ 첫 직업은 누구나 알만 한 패션 브랜드의 MD였고, 그 다음에는 일러스트레이터, 그 다음에는 카페를 했어요. 카페를 닫고는 작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도 해봤고요, 플로리스트를 거쳐서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예요. 그러고 보니 2년을 넘긴 직업이 없네요. 화려할 순 있지만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력서는 아니죠.


_ 직업을 자주 바꾼 이유가 있겠죠?


_ 호기심과 욕심이 많고,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긴 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하고 싶은 게 많았을 뿐이고, 모든 걸 한꺼번에 할 순 없었어요. 동시에 이것저것 하다 보면 집중도가 떨어지거든요. 한번에 하나씩,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환상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_ 하나씩 이뤄냈다기보다 미련을 버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직접 현실에 맞닿아보니 환상이 깨지는 거겠죠?


_ 패션 브랜드에 취직한 건, 그야말로 환상에 듬뿍 젖은 선택이었어요. 멋져 보였고, 화려해 보였고. 실제로도 멋지고 화려하지만, 추하고 초라한 모습도 숨어 있죠. 하지만 그래서 그만둔 건 아니고, MD라는 업종에 흥미를 못 느꼈어요. 콜렉팅을 하는 것보다는 저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러스트였어요. 일단 돈이 많이 안 들고,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으니까. 그림 그리는 것 자체는 재미있었고, 일도 꽤 들어왔는데, 외로웠어요. 하루 종일 혼자 작업실에 처박혀서 그림만 그렸거든요. 그래서 대뜸 카페를 열었어요. 카페와 작업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잖아요. 아지트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꿈은 곧 산산조각이 났죠. 커피만 내리는 데 하루가 다 갔고, 외롭지는 않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카페에서 매달 작은 전시를 열었는데, 어떤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별 기대 없이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했어요. 손님만 보다가 아티스트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세상에, 그건 더 힘든 일이었어요. 물론 제가 기획한 전시가 올라가고, 오프닝 파티가 열릴 때마다 뿌듯하긴 했죠. 하지만 역시 전 서포트하는 직업은 맞지 않아요. 제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거예요. 갤러리의 꽃장식을 취미 삼아 했었는데, 그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뭐든 취미로 할 때가 좋은 건데, 그걸 간과했죠. 플로리스트로써의 경력이 제일 짧아요. 반 년 정도? 새벽에, 또 한여름에 꽃시장에 가는 게 고역이었어요. 살아있는 것을 다룬다는 것 또한 스트레스였고.

결국 지금은 이 모든 걸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죠. 그림 그릴 때랑 비슷해요. 창작을 하는 건 좋지만, 다시 외로워졌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어서 좋아요.


_ 한 번 취직하기도 어려운 요즘인데, 능력이 출중하신 것 같아요.


_ 능력보다는 꾸준함과 적극성이라고 생각해요. 전 일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거든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시작해요. 그리고 여기저기 신나게 떠들고 다녀요. 나 요즘 이런 거 해, 이거 너무 재미있더라, 이런 일 필요로 하는 데 없니?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길이 조금씩 트이더라고요. 돈을 버는 것과는 별개지만.


_ 커리어 바꾸는 걸 마치 옷 갈아입는 것처럼 쉽게 말씀하시는데, 누구나 마음은 있지만 실행하기는 힘든 일이에요.

_ 쉽지 않죠. 평생 한 가지 일만 해도 어려운데, 계속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터에서 경쟁해야 하니까요. 눈물로 지새우는 날들도 많고, 잦은 실패에 좌절하는 날들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그런 부분마저도 일종의 쾌감을 주는 것 같아요. 다운이 있어야 업도 있는 법이죠.

뭐든지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 움직이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즐겁고 가볍게, 잘하는 것보다는 나만의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_ 이제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지향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 살고 계신 것 같아요. 다르지만 당연하게.

_ 어떻게 해야지,라고 계획해서 온 건 아니에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겐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어요.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세상에 완벽한 직업은 없어요. 뭔가 충족이 되면 결핍이 꼭 따라붙거든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스스로 극복해내거나, 포기해야 해요.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면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은 뭔지 알게 되니까.


_ 좀 변덕스럽다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_ 변덕이라뇨. 일관된 거죠. 제 마음에 일관적으로 충실한 것.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 하겠어요. 그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단점을 극복하기보다는 장점을 강화시키는 쪽을 택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끌리고 즐거운 걸 좇아요.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다 저 한 사람의 모습이고, 모두 진짜예요.


진심은 한 결의 흔들림 없이 한결같아야 한다고, 누가 그랬을까. 그 사람이 5년 전에 들이민 큼직한 꽃다발도, 어젯밤 건네준 김밥 한 줄도 다 같은 마음이거늘.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겉모습들을 판단하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마음의 흐름을 볼 줄 알아야겠다. 진짜는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진짜일 테니.


수국은 여러 가지 색깔로 피는데, 독특하게도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이 결정됩니다. 알칼리성 흙에서는 붉게, 산성 흙에서는 푸르게. 그래서 변덕이라는 꽃말이 주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물을 굉장히 좋아해서 항시 수분이 공급되어야 하지만, 잠시 쪼그라든 꽃은 물에 꽂아놓으면 다시 피어나기도 하지요. 앤틱 수국은 일반 수국과는 다르게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로 볼 수 있습니다.


Flower arrangement – 오션송

Text & image – 더콤마에이

매거진의 이전글수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