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틸베] 인터뷰
[Astilbe / 아스틸베]
꽃말 : 소용없는 일, 기약 없는 사랑
_ 포기가 빠른 편인가요?
_ 딱히 뭘 포기한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이미 마음이 떠나는 쪽에 가까워요. 결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미련이 별로 없어요.
_ 최근에 한 포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_ 친구...겠네요. 이번에는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어버렸어요.
_ 어떤 친구였길래.
_ 포기할 정도의 사이라면 많이 친했겠죠? 어째서 제일 가까운 사이들이 가장 어려운지, 속상하게 말이에요.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관심사는 비슷한데 둘 다 예민하고, 희한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외모도 어딘가 유사한 분위기를 풍겼고. 하지만 전 활발한 성격이고, 친구는 그에 비하면 내성적인 편이었죠.
_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나셨나 봐요.
_ 네, 미술학원을 같이 다녔거든요. 대학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렇게 안 됐어요. 친구가 떨어지고 다른 학교에 갔거든요. 제 잘못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서 눈치를 볼 때가 많았죠.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잖아요. 배려랍시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기분 나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각자 학교에 적응하면서부터는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이번에 와서는 그것 또한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전 예민하긴 하지만 뒤돌아서면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
같은 공모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상을 받았어요. 정말 기뻤고, 친한 친구니까 당연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는데,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그 뒤로는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죠. 사실 그 친구가 저보다 잘 된 일도 많았는데. 알게 모르게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나 봐요.
_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본인이 여유가 없으면 타인의 행복을 마냥 축하해주기 힘들죠. 내 배가 불러야 남의 떡을 넘보지 않을 수 있는 거거든요. 그걸 나무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_ 당연히 이해해요. 저도 욕심이 많거든요. 무조건 친구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마찰은 계속됐어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말들로 상처 주고, 학업뿐 아니라 연애, 취업, 결혼 등 모든 삶의 방식에 있어서 서로를 의식했던 것 같아요. 속으로는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무시하며 만나오다가, 결국 고름이 터지고 말았죠. 전 그동안의 모든 걸 대화로 풀고 싶었고, 회피하려는 듯한 친구를 붙잡고 약 세 시간의 통화를 하긴 했는데 찝찝함이 없어지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 관계를 놓을 수가 없었어요. 어딘가 위태로운 느낌을 안고, 조금 달라진 관계를 지속했어요.
_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나요?
_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딱히 어느 쪽이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잘 안 맞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그게 더 문제더라고요. 누구 하나가 잘못한 거라면 사과하고 풀면 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활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너무 다른 부류의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걸 깨달으면서부터는 조금씩 희망을 버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친구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한국에 올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반갑게 맞이해보려고 했는데, 대화 중에 절 거부하는 느낌을 받고 말았어요. 친구는 날 오래전에 버렸구나, 이젠 나도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죠.
_ 슬펐나요?
_ 아뇨. 허무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끊어져있던 끈을 나 혼자 붙잡고 있던 거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노력으로 이어가는 거예요. 그중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죠. 쌍방으로 이뤄져야 하니까. 혼자 버둥거리는 관계는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건 그냥 보내주는 게 좋아요.
_ 말은 그렇게 해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얘기하시는 걸 보면 여전히 곱씹고 계신데.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는 거 아니에요?
_ 차라리 주먹다짐을 할 수 있다면 속시원 할 것 같네요. 지금으로써는 저희 사이가 좁혀질 것 같지 않아요. 둘 다 할머니가 되고 그 때도 같은 사회 안에 있다면 이 모든 게 한낱 유치한 추억으로 남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너무 기약할 수 없는 일이라서, 기대하지 않을래요. 저만 괴로워질 것 같아요.
슬픈 게 있다면, 아끼는 관계일수록 기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이에요. 전 사랑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받고자 하는 욕구도 큰데, 그게 결국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 알수록 사람이 어려워져요.
_ 그 노력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당신이 주는 관심과 사랑을 당연시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세요. 아마 자신이 받는 것 이상으로 돌려줄 줄 아는 사람들일 테니까.
아낄수록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는 말은 사람뿐 아니라 일, 건강 등 삶의 모든 것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더 번성하고, 방목해서 키운 자식이 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들을 종종 목격하지 않나. 우리는 어쩌면 사랑하는 방법을 잘못 배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우리 모두 할머니가 되면 알게 될까. 이미 상처로 거칠어진 미래에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을까.
아스틸베는 작은 꽃들이 모여 뾰족하고 기다란 화형을 만들며, 아이보리, 옅은 핑크, 와인색 등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기보다 거친 텍스쳐를 갖고 있지만, 여성스럽고 깃털 같은 자태로 부케에 많이 사용되는 꽃입니다. 뿌리에서 오줌 냄새가 난다 하여 '노루오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Flower arrangement – 오션송
Text & image – 더콤마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