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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Sep 28. 2015

[BY MARS] 디자이너
유화성 인터뷰

Live in Stockholm 03

우리는 유화성을 마스(Mars)라고 부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로 시작하는 책 제목이 떠오르고는 어이없이 피식 웃고 말지만, 유화성은 그 책에 나오는 것처럼 답답한 남자가 아니다. 다른 것보다 '사람 좋지'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그는 자상하고 배려가 깊고 성실한 디자이너다. 아마 그래서 춥고 어두운 스톡홀름에서도 외롭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오후 햇살을 찾아 공원 벤치로 나가 앉았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약간 어색하게 목소리를 깔더니,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의 더 깊은 구석을 보여주었다.

스웨덴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건가요?


꼭 북유럽에서 제 디자인 스튜디오(BYMARS)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2002년에 여행을 왔는데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스웨덴에는 2008년에 왔어요. 해외 진출로 유학은 아주 좋은 핑계죠. 물론 얻는 것도 많고요.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북유럽 미술대학은 헬싱키의 Aalto라 저도 처음에는 그 쪽으로 지원해볼까 했는데, 결국 콘스트팍으로 왔어요.


어째서 방향을 바꿨나요?


전 공부하는 것보다는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면서 발견하는 걸 좋아해요. 알토는 제가 다니기엔 좀 아카데믹해요. 이론적인 연구를 많이 하죠. 그에 비해 콘스트팍은 이론보다 실험에 비중을 더 둬요. 디자인적 논리보다 작가의 논리가 잘 통한달까요. 순수예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하는 학교인 것 같아요.


스웨덴에 유학 와서 가장 기대할 수 있는 건 뭘까요?  교육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말이에요.


본인의 영역을 파괴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울타리를 깨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없는 곳이에요. 자신에 대한, 또 타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 하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저를 소개할 때 제품 디자이너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질문들이 좀 당황스러워요. 명확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데,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건 정말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정해진 바운더리 안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타이틀이 있으면 살기 편하죠. 그런 면에서는 스웨덴에서 작업하는 게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것 같아요. 졸업하고 스튜디오 오픈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스튜디오를 열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막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결혼하자마자 아내와 함께 온 건데, 졸업 직전에 아들을 낳았거든요. 비자는 곧 만료될 상황이고, 비자 연장을 위해서는 사업자 등록을 할  수밖에 없었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고민할 새가 없었다는 게.


사업자 등록만 하면 비자가 나오나 봐요.


사업계획서라던지 재정상태를 심사하긴 하지만,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에요. 스웨덴은 평등의식이 아주 중요한 나라예요.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최근에 바뀐 법을 보니 유학생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이제 졸업 후 신청만 하면 기본적으로 6개월짜리 비자가 나와요. 구직이나 사업을 시작할 현실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BY MARS의 대표작은 뭐가 있어요?


Hat 조명이라고 할 수 있죠. 논문을 쓰면서 습작으로 해본 거였는데 어느새 대표작이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더 애착을 갖는 작품은 이게 아니라서 약간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네요.


대중적인 작품이 대표적인 작품이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아무래도 쉽게 이해하고 호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상업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왜 모자의 형태로 조명을 만들게 된 건가요?


제 졸전 소재가 ‘형태언어’였어요. 문학가가 글로 예술을 만든다면, 디자이너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비슷한 기능을 가진 물체를 대체시켜보는 작업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모자였던 거죠. 전등갓과 같이 빛을 차단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으니까.


그런데 습작을 양산하셨네요.


스톡홀름 디자인 페어에서 전시를 했는데, 반응이 괜찮은 거예요. 구매 문의도 들어오고. 그런 와중에 KIDP(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차세대디자인리더' 지원사업에 합격을 하고, 지원금으로 양산할 수 있게 됐어요. 제작업체를 찾는 것부터 난항이었고, 간신히 찾은 업체에서도 시장에 나오기까지 1년 반이나 걸렸죠.


뭐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끝을 보는 것 같아요.


제가 그거 하나는 잘 하거든요. 끈질기게 하는 거.

콘스트팍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많은 무게를 싣는 것 같아요. 이 캐비닛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대걸레 자루를 잘라서 만든 캐비닛이에요. 그 날따라 대걸레 자루가 참 예뻐 보였는데, 그래 봤자 공장에서 저급 목재로 대량 생산되는 부품일 뿐이죠. 그 사실에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태생에 따라 정해지는 미래라니, 인간사회랑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이 막대기들을 갖고 원목이 만들 수 없는 가구를 만들고자 했어요.


신분상승 프로젝트네요. 스웨덴에 살다 보니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걸까요? 소수를 인정하는 문화가 강한 편이잖아요.


아무래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관이 변했겠죠. 갑자기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있었더라면 BY MARS는 불가능했을까요?


아마도. 여기서도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게 스웨덴에서는 포용되는 느낌이라면, 한국에서는 소외되는 느낌이에요. 여기에는 저처럼 개인작업을 하는 아티스트가 많고, 그 부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는 한량으로 생각되는 거예요.


직업은 곧 ‘경제적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요. 돈을 버는 일이 아니면 직업보다 취미생활로 치부되기 쉽죠.


한국에서는 소비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그렇게 강하지 않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육아에도 별로 돈이 들지 않고, 물질적으로 남과 비교할 일이 없어요.

그래도 이방인으로써 느끼는 어려움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 또한  2년가량 지내봤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언어 문제는 당연히 있어요. 스웨덴 사람들이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제가 스웨덴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소외되기 마련이에요. 여기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친해지는 것 같아도 어느 이상 삶을 오픈하지 않아요.

제가 여기에서 자란 게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인 소외감도 느껴요. 예를 들어 미드썸머Midsommar라는 명절이 있는데, 어떻게 즐겨야 하는 지도 모르거니와 설령 참여를 한다 해도 감흥이 없어요.


가족이 있어서 많은 힘이 되겠어요.


가족이 전부죠. 아마 가족이 없었더라면  오래전에 한국에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삶에서 더 바랄 게 있나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안정이죠. Hat 조명을 양산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고. 개인작업을 하는 와중에 잠시 현실을 택한 거예요. 앞으로도 현실과 이상의 줄타기는  계속될 것 같아요. 어렵더라도, 그게 제가 잘 사는 방식이니까.

나는 그와 전시도  함께했었고, 나름 쿵짝이 잘 맞는 콤비였다. 그렇다고 동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궁합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비싸고 춥고 피곤했던 전시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다른 길로 들어섰고, 그는 약간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멈추지 말라며 응원해주었다. 아마 내 새로운 행보의 모든 걸 이해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 순간을 스치는 것들은 아슬아슬할 뿐이고, 세상의 모든 일은 끈질기게 매달려봐야 알까 말까 한 것일 테니까.

마침 내 여행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 스톡홀름의 여름은 강렬했고, 찰나 같이 지나갈 것이었다. 그 순간만을 경험한 이들에게 그 곳은 천국이겠지만, 다른 순간을 경험한 이에게는 지옥과도 같을 수 있는 곳이리라. 정의를 내린다는 건 그런 것이다.


mars-hwasung.com

www.bymars.se


+project images from BYM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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