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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Oct 26. 2015

[Textcontext] 김승연 작가 인터뷰

 그림으로 하는 이야기 01

닫혀 있는 작업실 (혹은 쇼룸) 앞에 차를 세워두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 사이 여대생 몇몇이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림 그리는 곳인가 봐'하는 대화를 나누며 지나갔다. 곧, 두 손에 커피를 든 김승연 작가가 나타났고,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여러 연령대의 여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림도 그리고 책도 팔고 하는 곳이라며 손수 만든 엽서를 한 장씩 쥐어주었다. 오늘 밥은 언제 주려나, 하고 기웃거리는 길고양이에게도 인사를 하며 작고 조용하지만 궁금하고 정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대화를 나눴다.

여우모자

텍스트컨텍스트Textcontext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텍스트가 외형이라면 컨텍스트는 그 안에 담긴 것이라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일을 하다 보니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스튜디오 이름을 짓는데 그림책에 국한되기 싫었고,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기도 했어요. 이름은 친구가 지어줬어요.


일러스트나 책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스토리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거죠?


네. [여우모자] 같은 경우는, 여우와 소녀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더 중요한 책이에요. 여우모자는 더 풍부하고 개성 있는 이야기를 위한 요소인 셈이죠. 


실제로 어른들이 보면 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가슴 시린 느낌을 받았어요. 간단한 설명 부탁드려요.


친구가 없는 한 소녀에게 살펴야 할 아기 여우가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여우를 모자처럼 쓰고 다니죠. 그리고 소녀의 삶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해요.

얀얀

두 번째 책 [얀얀]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얀얀]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 빠져 살다가, 털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처음 하게 되는 말이 "얀얀"인데, 털실이라는 뜻이죠. [얀얀]은 프랑스에서 발달이 더딘 아이들을 위한 치료극으로 제작됐어요.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일찍부터 또래에 비해 성숙했어요. 다소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었고, 뛰어노는 것보다 혼자 생각하기를 즐겼어요. 그렇다고 사교성이 부족하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주변에서 그런 저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에게 전 고집이 세고 유별난 아이였죠. 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다 보니 주변을 의식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성향을 억압하려고도 해봤는데, 재능은 그렇게 죽여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행히 이젠 제 마음을 상상하고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면서 표현할 수 있게 됐죠.


창작활동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어서 좋죠. 그런데 엄마의 존재가 계속 등장하네요.


저도 의식하지 못했어요. 원래는 강아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는데, 엄마가 못 키우게 하셨거든요. 모자처럼 쓰고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개모자는 조금 이상해서 여우모자가 된 거고요. 그런데 완성된 책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더라고요.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믿고 기다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엄마는 절 고치고 싶어하셨죠. 이 사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저 또한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에게 비슷한 욕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 자신과 엄마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에 담은 것 같아요. 실제로 책을 만들면서 관계의 개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상과 실제 대상 사이의 갭을 줄이면서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엄마랑 친구 같이 지내시나 봐요. 


엄마가 뜨개질을 시작하셨는데 정말 좋아하세요. 제가 도와드리기도 하지만 [얀얀]에서처럼 지켜보고 기다리려고 노력해요. 제가 그런 책을 썼다고 해서 아직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거지.


공감해요. 그래도 직접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텍스트컨텍스트는 그래픽 스튜디오라고 소개가 돼 있더라고요. 하지만 범위가 굉장히 넓다고 느꼈어요. 이야기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출판, 패션디자인, 자수 등 영역에 경계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래요. 왜 그래픽 스튜디오가 그래픽 작업을 안 하느냐고. 하지만 전 디자인을 고집하기보다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거고, 이름이나 도구에 제약받고 싶지 않아요. 실제로 타이틀을 확실하게 지으면 정해진 종류의 일만 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이 작은 공간도 저에게는 놀이터 같은 곳이라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책도 팔고 그림도 팔지만 사람도 만나고, 작업도 해요.

전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어요. 처음에는 뭐하는 곳인가 어리둥절했죠. 아닌 게 아니라 영화, 그래픽, 일러스트, 사진 등 분야가 정말 넓은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최적이었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하지 미디엄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자수를 하는 것도, 실이라는 재료를 물감처럼 쓰는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자수가인 건 아니죠. 다만 이야기마다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있어요.


저도 분야에 국한되는 걸 못 참는 편이에요. 하지만 기존의 영역에서 벗어나니 사람들이 어려워하더라고요. 사회의 기준과 내 기준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스스로 기준이 확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넓은 울타리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이름이야 얼마든지 새로 지을 수도 있는 걸요.

작품에서 겨울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요. 실제 배경도 그렇고, 포근한 느낌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추운데 포근한 걸 좋아해요. 니트를 좋아하고,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죠. 겨울이 다가오면 설레기도 해요. 몸이 적당히 춥고 배를 비우면 머리가 깨어나는 것 같아요.


동물과 자연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고기는 안 좋아해요.


동물도 털이 있는 게 좋아요?


그런가 봐요.


아기자기한 취향이신 것 같은데.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해요.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제 그림을 보고 소녀 같다는 말들을 하시니 그렇게 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한 방향으로 쏠리는 걸 경계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계속 찾아가고 있는 중일 거예요.


완성되는 날이 올까요?


온다면, 지겨워져서 다른 걸 찾으러 나서겠죠. 그래도 완성이라는 걸 한 번쯤 경험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여우모자

[얀얀]이 출간된 지 시간이 좀 지났어요. 텍스트컨텍스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은 없나요?


제가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제 스타일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인지도를 쌓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이미지를 남발해서 이야기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과해지면 안에 있는 걸 놓치게 되잖아요.


그럼 앞으로의 목표는 계속 이야기를 만드는 것인가요?


목표라기보다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오래도록 제 작품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어야 전 작품들도 계속 보이게 되겠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약 열 권 정도의 책을 내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꽤 길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너무 일만 하기보다 사람들을 만나서 영감도 받고, 다양한 것들을 제 안에 쌓아두고 있어요.


내 일을 한다는 것의 어떤 면이 가장 만족스러우신가요?


막연하게나마 꿈꿔왔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 일은 그것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다는 점이 기분 좋아요. 물론 그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죠. 이런 삶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겠지만, 저는 조금씩 더 만족스러워져요. 그런데 이런 느낌이 너무 일찍 와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고생도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어본 후에 얻어냈을 때야 비로소 가치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김승연 작가는 차기작의 스토리를 읊어주고 있었다. 결말을 고민 중이라며 몇 가지 옵션을 이야기해줬는데, 개인적인 감상평을 들려주었으나 마음을 정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나오기 전에 태어날지 말지 고민하는 아기의 이야기였고, 이 어이없고 귀여운 이야기에서 예상치 못한 위안을 받아버렸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든다는 대목이 마음으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림책을 사본 적이 없었다. 읽을 거리가 많은, 두꺼운 책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음으로 읽는 책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첫 그림책, [여우모자] 한 권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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