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보다는 마루, 가스보다는 연탄을 말하며 컸다. 집 한 구석에는 푸르스름한 팔각형 상자가 나뒹굴었고, 가운데 뚜껑을 따면 머리가 빨간 성냥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손가락보다 짧고 얇은 나무도막을 빠르게 그어 불씨를 내는 일은 어쩐지 조금 긴장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불씨는 나무 길을 타고 올라 손가락 끝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가정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성냥은 호텔이나 바에서 화려한 로고를 입고 작은 유리그릇에 무심하게, 하지만 간절하게 담겨있곤 했다. 그마저도 라이터에게 자리를 내주었지만. 지금은 빵집에서 생일 케익을 살 때에야 마주할 수 있다.
그 성냥이 돌아왔다. 약간은 사탕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은 분홍빛, 노랑빛, 민트빛의 성냥 상자들을 집에 다시 들여놓기 시작했다. 성냥을 긋는 소리, 나무 심지가 타들어가는 냄새, 손목을 흔들어 꺼진 불에서 나는 연기. 아끼는 향초에 불 붙이는 짧은 시간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리추얼로 삶에 끼어들었다.
신소현 -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이하 신)
전민성 - 브랜드 디렉터 (이하 전)
오이뮤 (OIMU- Oneday I Met yoU)라는 이름의 의미가 따뜻해요. 사람, 물건, 경험을 만난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전달하고자 하시는데,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고 잘 기억하기 위한 오이뮤의 방식이 있나요?
신 - 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수집을 하거나 사진 찍고 메모하는 걸 좋아해요. 호기심이 많아서 마주치는 순간들에 충실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궁금한 건 그냥 넘어가지 않거든요.
전 - 저희가 다루는 주제들이 주로 흔적에 대한 것이라 지금의 습관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어요. 어릴 적의 기억을 되짚어보거나 윗세대의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많아요.
지금까지 세 가지 프로젝트를 하셨는데,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전 - 성냥 프로젝트는 사양 산업을 살려내기 위해 기존의 성냥을 재해석한 작업이에요. 한 산업이 사라져 간다는 게 아쉬웠어요. 협업하고 있는 유엔상사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장이거든요.
에어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인데 소재가 향이에요. 향수나 초 등 편리한 서양 제품들이 유입되면서 선향은 제사 같은 환경에서만 사용되는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죠. 사라져 가는 문화를 새롭게 소개하기 위해 상품을 개발하고, 과거의 생활 모습들을 연출하려고 노력했어요.
포춘 프로젝트는 복을 염원했던 민족적 문화를 소개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복을 비는 행위에 관심을 가졌고, 첫 상품으로 선보인 게 민화 족자예요. 과거에는 좋은 뜻을 기리는 목적에서 민화 족자를 걸어두곤 했거든요.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보다 심미적인 목적에 그치고 있지만, 이왕이면 우리의 문화도 이해하고 좋은 뜻도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 - 사실 디자인으로 사양 산업을 부활시킨다는 건 조금 과한 목표 같지만, 그래도 그 수명을 조금이나마 연장시켜보고자 해요. 디자인을 통해서 이런 일들이 가능한지 실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특히 한국적인 헤리티지에 관심이 많은데, 일종의 책임감인가요?
신 - 책임감은 없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나 자신을 위한 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점점 오이뮤가 성장하고 공공성을 띤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임감이 커져 가요.
전통 기념품 숍을 보면 안타까운 기분도 들겠어요.
신 - 좋음과 그렇지 않음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인 거 같아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길 원한다면 뻔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좀 더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여요.
사라져 가는 가치를 되살리는 일, 또는 사회적 이슈에 힘을 싣는 일 등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가치관을 갖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신 - 저희가 84/86년생인데, 세대적인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과 그 전 세대,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 사이에서 다양한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세대죠.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고요. 그래서 더욱 폭넓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조부모님과 밀접하게 살면서 간접 경험을 많이 했던 게 영향이 있었어요.
전 - 저도 할머니와 살면서 옛날 물건들을 많이 사용해봤어요. 중간자는 과도기에 걸쳐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가치나 사회적 이슈에 당연히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향은 주로 동양권에서 사용되어 온 물품인데, 한국만의 향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신 - 동양의 향은 대부분 태우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외에 먹기도 하는 등 다양한 향 문화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다 소실되어버렸죠. 대신 향 받침대를 만들 때 삼국시대 향로들의 형태를 연구하고 디테일을 반영했어요.
사진이나 그림 포스터를 많이 활용하는 요즘, 족자는 굉장히 신선하지만 낯설어요. 리스크가 크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전 - 그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성냥을 론칭할 때만 해도 시장가가 없었어요. 성냥을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족자라는 아이템도 애초에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어요. 오이뮤의 모든 일들이 갖고 있는 속성이고, 비슷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어왔기 때문에 아이템 자체가 두려운 요소는 아니에요. 물론 성공을 장담할 순 없죠.
제조 공정을 보면 최대한 전통적인 양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생산한다는 것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일 텐데요.
신 -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에요. 콘텐츠를 발굴하고 나면 제조자를 찾아가 기획 의도를 설득해야 하는데,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계세요. 현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굳이 모험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죠. 이 과정이 제일 오래 걸리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쫒아다니면서 의지를 보여드려야 해요.
전 - 새로운 상품을 만들다 보니 기존의 공정에서 조금 다른 단계들을 추가하게 되는데, 특히 족자가 정말 힘들었어요. 거친 한지 표면 위에 인쇄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균일하게 대형 금박을 한다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기계 세팅만 3-4시간이 걸리고, 기사님 한 분이 하루 종일 오이뮤 족자만 붙들고 계셨어요. 하나하나 감리해야 하니 저희도 내내 지키고 있고. 그렇게 해도 수율이 10% 밖에 안 나와요. 많이 배웠어요. 한지에 인쇄하면 안 되겠다던지 (웃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거죠. 족자는 지금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는 추가 제작이 힘들 것 같아요. 기사님이 안 받아주실 걸요.
장인들이 함께 노력해주시는 부분도 상당히 크네요.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도 느껴지나요?
신 - 새로운 시장이 존재하고, 새로운 방법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시는 듯해요. 향방 같은 경우에는 주로 불교용품을 납품했는데, 디자인 편집숍에서 판매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다며 재미있어하세요. 유엔상사 사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게 신통하다고 하시기도 하고요. 오이뮤의 제품만이 아닌 공장이나 협업체 소개도 함께 하고 있는데, 그 가치도 크다고 생각해요.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기업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생각하니 디앤디파트먼트가 떠올랐어요. 우리나라에도 입점되어 있지만 잘 녹아들지 않는 형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오이뮤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어요.
신 - 헤리티지에 관한 사업에 있어서 일본 브랜드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기도 했어요. 모순적이잖아요. 일본이 빼앗아간 문화를 그 플랫폼으로 다시 살린다는 게. 우리의 것은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다른 나라의 콘텐츠를 빌려온다는 점이 굉장히 아쉬웠죠. 그리고 일본은 현대까지 장인문화를 소비하는 행태가 잘 유지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시행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오이뮤의 상품들을 대중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말 대중적인 브랜드들은 보다 넓은 층의 사람들을 위해 공산품을 만들어내죠. 반면 저희는 문화나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있는 타깃 안에서 소비돼요. 물론 저희의 의도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죠. 옛날에는 필수품이었다면 지금은 기호품이 되도록 유도했어요.
소비자의 소비관을 강요할 순 없죠.
신 - 어린 분들은 단순히 예뻐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지만, 2-30대 이상으로는 소비 행태가 가치 소비로 변하고 있어요. 상품의 외모만큼 안에 담긴 스토리를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모니터링을 하고 내용을 훑어보면 오이뮤의 메시지와 협업하는 장인들이 이해되고 있다고 느껴요.
저 또한 디자인과 제조를 했던 사람으로서 자주 느꼈던 건,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것과 소비자가 좋아하는 게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신 - 저는 제안하는 입장이고, 그 제안에 동의해주는 분들도 있지만 아닌 분들도 당연히 있죠. 간극은 좁히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대중에게 맞추기 위해 브랜드 이미지가 흔들려선 안되거든요.
전 -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던 제품은 영화사와 협업했던 성냥이에요. 정말 잘 팔렸어요. 나름 분석해본 바로는 전면의 일러스트와 삽지를 영화 필름처럼 만들어서 넣은 포인트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감성적인 요소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의미보다 심미적인 부분이 소비에 큰 영향을 주긴 해요.
일단 예뻐야 관심이 가고, 관심을 갖고 나서야 그 안의 의미도 발견하게 되는 거니까요. 디자인의 힘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죠.
금융과 디자인 업계 종사자들이었는데 어떻게 동업까지 하게 되었나요?
전 - 엄청난 포부를 갖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투잡처럼 시작했죠. 각자 다른 꿈을 갖고 있었는데, 저보다 소현씨 꿈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어요. 그 꿈을 지켜보고, 돕고 싶어서 동업을 결심하게 됐어요. 연인일 때 오이뮤를 창업하고 그 와중에 결혼도 했네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안정적인 회사를 떠나 창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두 분 다 규모도 있고 인지도도 있는 직장이었죠.
신 - 언제나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는데, 대학생 때는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면 해결된다고 믿었어요. 아니더라고요. 그런 온실 속에 있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고 자각했어요. 물론 회사를 그만두면 삶의 큰 부분이 없어지지만, 안정보다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찾기 위해 모험하고 싶었어요. 남편도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지금은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대단한 돈을 벌면서 편하게 사는 건 아니지만 즐겁고 재미있어요.
전 - 금융 회사에서 5년 이상 근속한 상태였는데 회사의 부속품이 되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이렇게 젊은 날들을 흘려보내도 괜찮은 건지 고민하게 되죠. 우리가 월급 받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연봉을 계산해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저울질해서는 절대 바꿀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유지는 하겠구나 싶을 때 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그때에 비해서 지금 삶의 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요.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았었는데, 용종이 사라졌다니까요.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타입이신가 봐요.
전 - 맞아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요.
변화를 지향하게 되려면 처해있는 상황에 어느 정도 불편함을 느껴야 되는 것 같아요. 어딘가 남들과 다르거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요?
전 - 많이 느꼈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크게 신경 쓰고 비교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스스로 사는 모습에 집중할 뿐이지.
남들과 달랐다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봤나요?
전 - 창업이나 이직 등 일의 형태의 문제라기보다는 스스로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기 계획은 회사 안에서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었어요. 프로그래머로 전향하겠다고 독학하면서 IT 부서로 이동시켜달라고 피력하기도 했죠. 결국은 오이뮤에 흡수된 모양이지만 이게 훨씬 재미있고 가치 있어요.
서로 보완이 잘 돼 보여요.
신 - 남편은 저의 취약한 부분에 있어서 우수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이성적이고, 특히 수치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회계 업무를 도맡아주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전 -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경영적인 부분을 맡고 있다고 보긴 어렵고, 여느 자영업자처럼 그저 열심히 하는 거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나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지금의 삶은 오이뮤가 독차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신 - 사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쉬는 게 제일 힘들어요. 작년 말에는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약속한 일들은 쌓여있는데 심신이 지칠 때까지 지쳐버렸죠. 다음 달에는 꼭 방학을 하리라 선언하고 견뎠는데 결국 휴업은 못했어요. 그냥 마음을 달래며 조금씩 푼 것 같아요.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죠. 하지만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으니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가 없어요.
오이뮤의 다음은 무엇일까요?
신 - 이사?
전 - 그건 좀 먼 미래이고, 오이뮤가 4인 체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당분간 큰 변화를 계획하고 있진 않아요. 2018년의 최대 도전이라 하면 네 번째 프로젝트가 되겠죠. 저희도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저희 마음대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가 실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가 뽑힐 거예요.
오이뮤가 아닌 개인적인 결정들이 있다면?
신 - 딱히 없어요. 그저 잘 지내는 거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개인적인 것들은 계획할 수도 없네요.
전 - 앞으로는 각자의 개인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해요. 그래야 오이뮤도 더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겠죠.
매우 추운 날이었다. 방배동의 스튜디오는 일반 가정집과 슈퍼마켓, 놀이터 사이에서 아담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길가의 검은 고양이가 그 앞에 앉아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문을 열어주면 잠시 들어와 난로를 쬐었다. 얼굴이 작고 몸이 긴 고양이는 세 사람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녹음되고 있는 대화에 자기의 목소리를 얹었고, 하얗고 둥그런 고양이는 스튜디오 뒤편에서 내내 무관심을 표했다. 동네 꼬마가 레이저 포인트를 들고 와 고양이와 놀고 싶다며 문을 두드렸다. 종종 있는 일인 듯, 신소현 디자이너는 일하는 중이니 나중에 놀러 오라고 타일렀다. 용돈을 모아 고양이 간식을 사주는 꼬마라더라. 난로 위의 주전자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작은 공간의 공기를 한층 더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작은 뱃지들과 향분낭을 몇 개 사서 지인들에게 설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그 안에 담긴 향과 복, 나의 작은 마음과 오이뮤의 큰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기를 바라면서. 잊고 있던 코트 주머니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향긋한 내음을 맡으며 좋음을 느껴주기를.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에 금빛 뱃지를 달며 건강과 출세를 기대해보기를.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의 과거가 일상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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