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7개월 아들내미 호수는 엄청나게 활발한 타입의 아이가 아니다. 내향적이라느니 어떻다느니 감히 판단하려는 건 아니지만 또래들과 한데 모아놓으면 대체로 얌전한 쪽에 속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보통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 쫓아다니느라 엄청 고생한다는데 그런 류의 고생은 거의 안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바닷가에 놀러 가면 수영보다는 모래성 쌓기를 좋아하는 애.
한 달 전부터 문화센터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 우선적으로 등록한 수업은 <트니트니> (문알못들을 위한 설명 : 트니트니는 육체활동이 주를 이루는 수업입니다. 앞구르기나 장애물 넘기 등 몸을 많이/크게 사용하는 활동을 40분 동안 해요.)이고, 집에 있으면 뭐하냐 하루 더 나가보자 해서 추가로 등록한 게 <글렌도만> (영재교실인데 단어나 숫자 같은 것들을 노래와 교구를 통해 학습하는 수업입니다. 책상에 빙 둘러앉아서 40분 동안 들어요.)이다. 개인적으로 <글렌도만>은 조기교육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내키지 않았으나 호수의 식사시간, 낮잠시간, 월령 등을 모두 따져봤을 때 등록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수업이었다. 실제로 먼데이, 투스데이, 노벰버, 디셈버를 노래하고, 영단어가 적혀있는 세밀화 카드를 주면서 매일 저녁 읽어주라고 하는 대목들에서 흠칫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이에게 뭐가 좋고 나쁘고를 내가 미리 판단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호수는 <트니트니>보다 <글렌도만>을 훨씬 즐긴다. <글렌도만> 시간에는 노래에 맞춰 트월킹이 절로 나오고, 자꾸 선생님 옆으로 나가려고 해서 기꺼이 앞자리를 사수하려는 극성 엄마가 되어준다. 반면 <트니트니>에 가서는 소근육 운동(손 쓰는 것) 외에는 별로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까까나 씹으며 친구들이 뛰어다니는 걸 구경하거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흥을 돋우는 정도랄까. 처음에는 멋모르고 곧잘 따라왔는데 이제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표현이 확실해졌다.
이런 상황을 얘기하면 쉽게 돌아오는 반응이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환경에 계속 노출시키면 돼. 크면서 좋아져.’ 등인데 그러면 나는 괜히 꼬인다. 자기의 것이 아닌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는 게 좋은 걸까? 평생토록 불편하고 낯선 것들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데 고작 17개월 산 작은 인간마저도 그래야 할까? 지금은 그냥 편한 것,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충분할 텐데. 게다가 점점 좋아진다는 말은 현재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아이가 어른들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변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호수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구르는 것보다 책이나 사진을 보는 것, 두 팔을 높이 들고 제자리에서 춤추는 것, 여유로운 공간을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학습된 어린아이의 이미지와 조금 다를 뿐이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데 내 무릎에 앉아 그걸 구경하고 있는 호수를 보면 채 거르기도 전에 많은 생각들이 쏟아진다. 불편한가? 괜찮은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에 집중력과 적극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나는 그냥 보통의 엄마다. 고로 이 글은 나에게 남기는 독백이다. 호수는 <트니트니>가 싫은 게 아니라 내키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게 싫고, 불편하다는 생각은 호수의 것이 아니라 나의 오해라는 것. 그러니까 호수는 까까나 씹으며 친구들을 구경하는 게 즐거운 아이니 마음 편히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만큼 하도록 복잡한 시선을 보내지 말 것.
호수가 계속 원하지 않는다면 다음 학기부터는 <트니트니>를 듣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내켜하지 않았던 <글렌도만>은 또 등록할 가능성이 높고. 가서 뭘 하고 뭘 배우고 자시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호수가 즐거워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