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간만에 남편과 한바탕 했다. 실로 간만이긴 한데, 우리가 깨를 볶아서라기보다는 남편의 야근이 잦은 탓에 부딪힐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만에 함께 하는 평일 저녁식사를 내 무의식은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싸우게 된 계기는 항상 그렇지만 콧방귀가 나올 만큼 사소했다. 찌개와 반찬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 중에 호수가 장난을 치다가 김치찌개 그릇에 꽂혀있던 숟가락을 손으로 친 것이다. 뜨끈하고 시뻘건 찌개가 내 핸드폰과 허벅지, 의자와 아이의 발가락에 쏟아졌다.
싸우던 중에 남편이 한 말에 의하면 그냥 냅킨으로 닦으면 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 말대로 핸드폰과 허벅지를 닦다가 버튼이 눌렸다. 남편이 도울 생각은 안 하고 자기 숟가락을 떴기 때문이다. 팩트만 보자면 찌개가 엄청 뜨거운 것도 아니었고, 냅킨은 내 쪽에 있었고, 아이를 옆에 앉히는 실수를 한 것도 나였다. 하지만 엉덩이 한번 들썩,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에게 가만히 앉았냐는 말이 튀어나갔고, 남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벌떡 일어나 반쯤 먹은 밥그릇을 치워버렸다.
호수가 태어난 지 16개월 만에 그 앞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이럴 바엔 일찍 오지 말라느니, 이기적이라느니, 너만 피곤하냐 나도 피곤하다, 등등 뻔한 레퍼토리의 가시 돋친 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 와중에 아이는 재워야 하고 시간에 밀려 방으로 들어가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설움이 몰려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온종일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날들이었다. 점심 때는 얼려놓은 피자 두 조각을 간신히 데워먹었고, 밤 9시가 되도록 샤워도 못했다. 남편은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강남에서 홍대를 오가는 지겨운 출퇴근을 하고, 나는 다 알지 못할 압박과 스트레스를 물리치면서 하루에 하루를 더한다. 누가 더 잘하고 잘못한 게 없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매일 열심히 살뿐이고, 그게 너무 피곤하고 피곤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뿐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건드림으로도 속이 터져버리고 만다.
다음날 남편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나도 짜증내서 미안해. 고맙게도 남편은 먼저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가족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와인을 사들고 귀가한 남편과 어색하게 마주 앉아 아이의 자동차 장난감을 실컷 검색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짜증낼만 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서운한 건 그런 일말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없으면 못 살만큼 돈독했던 우리가 무딘 가족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두려워. 우리가 연인 사이였으면 당신이 그렇게 앉아있지만은 않았을 거잖아./나도 우리 관계에 대해 똑같이 느끼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쏟아부으면 어떡해? 일방적으로 한쪽이 잘못해서, 한쪽만 노력해야 되는 일이 아니잖아. 우리가 예전처럼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아이가 없어야 되나?
안타깝게도 그 말이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가 없었으면 평생 연애하는 것처럼 둘이 알콩달콩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원했고, 아이를 가졌고, 이제 아이가 있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갈 숙제가 주어졌다. 매일 쌓이는 피로와 새로이 맞닥뜨리는 상황들과 싸우면서. 우리는 너무 달라. 네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딱 그만큼 나도 이해가 안 돼. 그 갭을 좁히고 싶은 건 욕심이었나 봐. 그럭저럭 잘 지내다가 한 번씩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사는 거겠지.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간밤에 검색한 중고 장난감을 픽업하러 의정부까지 달렸고, 나는 호수와 베란다 너머로 이삿짐 사다리차가 위아래로 짐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추리닝 차림으로 함께 동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쪽쪽 빨고, 떡볶이를 달랑달랑 사들고 돌아와 소파에 누워 영화 한 편 때리면서 축난 에너지를 충전하겠지.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그런 여유는 사치다. 최근에 무슨 영화가 개봉했더라?
그래도 남편은 단돈 만원에 거래한 새파란 자동차를 신나게 싣고 오는 길이고, 아이는 낮잠에서 깨면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할 것이고, 오후에는 함께 서울숲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재즈를 한바탕 들을 것이다. 둘이었다면 아마도 하지 않았을 외출인데 작은 인간 때문에 바지런하게도 챙겨나간다.
둘의 삶은 끝이 났고 이제는 빼박 셋이다. 남편의 손보다는 아이의 손을 잡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다. 여태껏 그게 참 아쉬웠는데 지금은 그럴 때다.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아이의 손에서는 또 다른 따뜻함과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의 애정은 달라진 거지 사라진 게 아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 현실은 이러한데 마음이 자꾸만 과거에 머무르려 하니 쿵짝이 안 맞는다. 괜찮아. 지지고 볶는 것에서도 구수한 냄새가 풍기잖아. 시커멓게 태워버리지만 말자.
덧, 무엇보다 호수 앞에서 싸운 게 마음에 걸렸다. 우리야 화해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지만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본 호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내내 장난감을 갖고 놀았지만 자기가 함부로 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책을 읽어주며 운 것에 죄책감도 한 몫했는데, 도움될 것 없는 감정을 버리고 그냥 사과했다. 엄마랑 아빠가 싸울 수도 있다고, 미안하다고. 솔직히 크면서 부부싸움 한 번 안 볼 수 있나. 우리 모두 이따금씩 오가는 말다툼 지붕 삼아 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