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사람들에게 호수 얘기를 하다 보면 으레 하게 되고 놀라움을 돌려받는 대목이 바로 기상시간이다. 온전한 야행성 몸뚱이에서 나온 이 아이의 기상시간은 평균, 그러니까 평균으로 따져서 아침 6시다. 6시를 아침이라고 할 수 있나? 새벽 아닌가? 해가 짧아지는 요즘 같아서는 무조건 새벽이다. 어쨌든 평균이라는 것은 중간치를 말하는 거니까, 5시에서 7시 사이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 16개월인 호수는 5개월부터 방을 따로 썼는데 보통 혼자 자다 일어나면 5시, 내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7시에 가깝게 일어난다. 눈을 떴다가도 곁에 누군가가 누워있으면 다시 잠을 청하곤 한다.
그러면 아예 같이 자지 그러냐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우리 집 구조상 세 가족이 함께 자려면 장롱과 화장대를 옮기고 침대 프레임을 갖다 버리고 매트리스를 다시 사는 등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아이를 향한 애틋함이 지금만치 되지 않았던 약 1년 전에는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사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애를 쫓고 애한테 쫓기며 치맛바람 틈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자고 혼자서도 잘 일어나고 혼자서도 잘 먹고 혼자서도 잘 노는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는데, 현실은 방만 따로 쓸 뿐 24시간, 그러니까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적으로 애를 쫓고 애한테 쫓기는 치맛바람 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방을 따로 쓰는 것도 사실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꿈을 꾸다가 깨서 울면 기다렸다는 듯이 부리나케 아이 옆에 누워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밤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 인정하자. 난 아이 옆에서 자면 행복하다. 하지만 밤새 뒹구는 작은 인간 옆에 낑겨서 자는 건 좀 곤욕스럽다. 아이의 매트리스는 허리도 배기고, 베개와 이불도 영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침대에서 잘 자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망할 정신은 말짱해서 건넌방에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번쩍 깨고 만다. 이런 질 낮은 수면, 이제는 정말이지 수면장애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증상이 거의 1년 반째 이어지고 있으며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피부와 머릿결이 좀 푸석해지고 항상 피곤하다고 느끼지만 죽지는 않는구나, 새삼 인간의 몸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녹용과 종합비타민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호수가 잠을 조금만 더 잤으면, 제발 2시간, 아니 1시간만이라도 더 잤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런데 밥도 더 잘 먹었으면, 키도 더 컸으면, 말도 더 잘했으면, 하고 스멀스멀 바라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다짐은 잠과 함께 사라졌나 보다. 아니 지금도 말은 그렇게 한다. 건강하게만 크면 된다고. 하지만 찔린다. 너 그거 거짓말이잖아. 뭐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거짓말이잖아!
... 그래, 그래! 뻥이다! 물론 건강이 최우선이지만 잠도 더 자고 밥도 잘 먹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점점 공부도 더 잘했으면, 친구도 잘 사귀었으면, 운동도 잘했으면, 돈도 잘 벌었으면, 하고 있겠지.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하지만 이미 문화센터에만 가도 말을 똑 부러지게 하거나 율동을 잘 따라 하는 또래 아이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 해져버리고 만다.
이 정도는 괜찮아, 잠인데, 밥인데, 놀이인데 뭐, 하는 사이에 욕심은 점점 불어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연습해야 한다. 잠을 조금 자면 아아, 이제 일어나고 싶구나. 밥을 조금 먹으면 아아, 배가 안 고프구나. 하하하
어렵다. 그치만 당연히 어렵지.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만 잘 해내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진수성찬을 대령하고 문화센터에 열심히 실어 날라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 반쯤은 거짓말이어도 또 소리 내어 말한다. 호수야, 건강하기만 하면 돼. 아니, 아파도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