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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May 30. 2022

모란시장 강아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소설<모란시장>을 읽고


제목을 보자마자 이 소설은 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모란시장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멀지만 가까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모란시장의 이미지는 썩 좋지만은 못했다. '개시장'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장동에 소시장이 있다면 성남에는 모란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미지가 달랐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모란시장하면 비위생적으로 도축되어 눈을 감고 배를 열린 개들의 애잔한 모습과, 상자에 아무렇게나 담긴 강아지들이 병아리마냥 대충 팔리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장을 그렇게 기억해서 정말로 미안하지만. 그래서 그게 오해였다면 풀고 싶었고, 아니었다면 그시절의 모란시장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실 아직도 나는 그 동네 근처에도 가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나는 순간부터를 영등포에서 살았다. 영등포 시장과 영일청과물시장 주변에서 시장의 생리를 한소끔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봐온 나의 시선은 삽교와 닮은 듯도 했다. 도시에서 살았지만 억척스럽게 시장에 다니고 종종 배추시레기를 줍기도 하던 시절을 살아왔고, 시장의 각종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장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까운 게 청과물 시장이나 건어물 시장이라서인지 시장에 대한 두려움(?)은 좀 적었지만, 억척스러움과 닳아짐의 이미지는 짐짓 융통성이 없는 나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것이기는 했다. 영등포시장처럼 커다랗고 날것들이 난무하는-돼지 머리라든지, 혹은 생선의 내장 같은 것이 여과없이 질척한 바닥위에 깔린 좌판에 놓여서 내게 들이밀어지는- 때에는 곳에서는 길이라도 잃을까봐 정신을 바짝 부여잡았던 기억이 난다.




책의 소개만 보았을 때는 경숙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그러나 너무나도 존재했을 법한 하이퍼 리얼리즘적 처지에 묶인 경숙의 사연에 너무나 답도 없어 머리를 부여잡았다. 와중에 이게 하이퍼리얼리즘인가 싶지만 박사장 같은 인간 말종에게 금자까지 기생해야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물론 많은 쓰레기들은 납득이 안 되니까 납득되면 쓰레기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금자의 서사가 너무 지워진 채로 금자가 경숙을 압박하는 존재로만 등장하는 것은 아쉬운 면이었다. 뭐 삽교가 보기에는 나쁜 것과 좋은 것만 존재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물론 많은 여성 폭력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독립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려니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복잡한 서사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는 굴레에 얽매게 되었을 경숙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결국 분명치 않은 뉘앙스였지만, 결국 비극적인 끝을 통해서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 경숙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하다. 그러나 생판 남인 능평꽃집 여자와 명진이만도 못하게 경숙을 짓누르던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서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잃지 않으려는 것을 끝내 지키고 자신의 끝을 자신이 맺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삽교 기준의 '착한 인간'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또한 작품에서 인물로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뤄낸 것도 경숙이다. 능평꽃집 여자가, 명진이 짐짓 걱정해야했던 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경숙의 성장스토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생리는 사람 하나가, 개 한 마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부당한 세력에 저항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죄에 대해 인식하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고 숭고하게 일하는 꿋꿋하고 꼿꼿한 자들로 인해 부단히 이득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삶을 꾸짖을 수 있게 된다. '죄 없는 자만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은 틀렸다. 누구나 죄가 있다고 해서 그 죄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더 무한한 죄를, 자신이 짊어지지도 못할 죄를 짓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경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을 수는 없다. 또한 무한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반대쪽의 생명들을 그저 이용하도록 두어서도 안 된다. 덕상이가 죽어도 그 자리에는 덕상이의 후예가 들어서고, 마찬가지로 악의 축인 박사장이 죽어도 그 자리는 아마 나사장 같은 똘마니들이 들어찰 것이다. 그러나 그 고리를 끊고 나가는  경숙의 용기는 결코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 그 생명이 거래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다른 생명을 이어가게 하지만, 그래도 그 생명을 악용하는 사람과 경외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찝찝하게나마 닫힌 듯이 열려있는 결말로 가는 콩나물 거적으로 덮어놓고 외면해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이야기. 그러나 결코 덮어두고 갈 수는 없는 이야기를 여러분들도 함께 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서평단 #강출판사 @gangbook_  #모란시장 #이경희장편소설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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