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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Jun 03. 2022

방황이란 우주를 내 안에 품는 일이라는 것을

<방황의 조각들>을 읽고


요즘 나는 생각보다도 더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하도 인생이 갑갑해서 어깨너머로 배운 명리학에서는 내게 가장 갑갑하고 답답했던 10년이 끝나간다고 했다. 20대부터 돈 주고 사주 보러 가면 나쁜 말은 부러 안 하려는 사주쟁이들이 뭉뚱그리는 덕분에 거의 다 끝나가면서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나의 방황의 10년사는 심지어 구린 연애들과 함께 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아주 기가 막히게 지나간 일의 이유를 짚어내는 데에 아주 무릎을 탁 쳤다. 세상에 마상에 이럴 거를 왜 굳이 말을 안 해줬담?

아무튼 그 10년이 끝나간다. 그러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었고 남들은 모르고도 살 만한 일들도 굳이 똥손으로 콜랙팅했으며, 그 10년이 끝나가는 마당에야 겨우겨우, 내가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그간 나를 외면해온 결과로 우울함과 공황에 푹 절여졌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든 시간을 어쩌면 무심하게 지나온 내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무슨 금강불괴처럼. 아이고 인간아. 어쩜 그렇게 둔해. 근데 둔한 덕분에 살았으니까 그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힘들도록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쫄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울 척도 검사를 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는 항목만은 자신 있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뇌절회로가 발달했는데, 나를 조금 많이 힘들게 할 기미가 보이는 일들은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뭔가 하나 갑자기 튀어나와서 뚝하고 끊어버린다. '오히려 좋아'로 점철된 나. 대체 이건 뭘로 설명해야 하지. 그래서인지 후회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장점은 그런 거겠지? 나를 잘 알아간다는 것. 나를 좀 더 보듬을 줄 알게 된다는 것. 어차피 돌아가도 나는 다시 이 길로 올 사람일 줄을 안다는 것. 그러므로 후회하기보다는 지금의 방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게 된다는 것.


책을 보는 내내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상황들까지도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작가님이 나인 줄 알았다. 좀 다른 점이라면 호두과자 속 팥앙금만큼의 진심을 너무나도 자유자재의 언어로 잘 풀어내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보다 좀 더 용기 있게 버리고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간 인생 선배 같은 사람이라는 것.


요즘 들어서 온 우주가 너를 사랑한다는 류의 힐링 에세이는 혹했다 가다도 가벼워서, 힘들어 죽겠는데 힘내라는 소리나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앞이 안 보이는데 괜찮다는 소리나 속없이 하는 거 같아서 몇 장 읽다 질려버리곤 했는데, 이런 채도의 묵직하지만 밝은 희망이라면, 그런 방황 이야기라면 내 방황을 얹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이 너무나도 맛깔나서 줄 칠 문장이 너무 많아서 북스캔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북마크 해가며 읽고 독서모임에서 소개한 것은 덤.


방황하고 있는데 맥락 없는 위로받기에 지친 많은 나들에게, 무조건 추천한다. 우리의 흩어진 조각들이 우주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흩어질 때, 그것을 관망할 수 있고 우주에 나를 내맡길 수 있는, 그래서 그 우주를 내 것으로 품을 수 있도록 방황을 즐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방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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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힐링되는 포장과 엽서로 큰 선물 주시고 나의 방황을 지켜보며 서평 기다려주신 마누스 출판사와 온정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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