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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Jun 26. 2022

아는 것은 힘이고 트라우마는 당신을 파고든다.

폴 콘티, <트라우마는 삶을 어떻게 파고드는가>를 읽고


나는 트라우마 생존자이다. 


작년 이맘때 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그놈의 서열관계에 대혼란이 온 남고생들로부터 대차게 사이버불링을 당한 일이 있다. 책을 읽고 나니까 그조차도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유전된 트라우마와 같은 결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서열 동물'이라는 남고생들이 학교에 자주 오지 못하자 학업 분위기나 학교 분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고 리더가 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동안에 단 한 번도 그런 신뢰를 받아보지 못한 존재들이 그 자리를 노린 것이다. 마침 디씨 갤러리를 통해서 리더의 자리를 얼떨결에 얻은 그들은 자신이 가진 리더로서의 권력(?)을 어디까지 휘둘러도 될지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의 체계가 너무나도 엉망인 바람에 학교 또한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고, 아이들이 전출 가서 재정 상황이 엉망이 될까 봐(아이들이 전출 가면 학교 재정 상황에 타격이 가는 시스템이었어서 무조건 아이들을 잡으려고만 했다.) 원칙이고 뭐고 하는 것은 전혀 없이 오히려 그 사이버 일진들과 뒷구멍으로 내통하며 무고한 아이들과 교사들의 트라우마를 방치하는 시스템이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밉보이면 실명을 거론당하며 조리돌림 당했고, 학교고 교사고 무사하지 못했다. 거기에서 트라우마 당사자들을 구해내려는 내 노력은 거지 같은 시스템과 이상한 아이들의 콜라보를 통해 날조와 폭력, 허위 사실을 활용한 학생 및 교사 사이버 불링이라는 모양새로 나타나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렸음에 불구하고 학교는 오히려 가해자를 우쭈쭈 하는 모양새를 보였고, 가해자들은 내친김에 교사를 해고해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겠다면서 디씨 야갤에 교사의 신상을 유포하는 일까지 저질렀으나(덧붙여 오만 학교의 디씨 갤러리에 신상과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바람에 나중에 잡고 보니 일반인인 졸업생 백수놈도 하나 끼어있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학교는 여전히 가해자들과 내통해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 트라우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어디 교사가'라는 소릴 들었는지 모른다.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왜 애들 노는 데에 훼방을 놔서 그 꼴을 당했냐는 소리도 들었다. 이렇게나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무지하다. 


해당 시기에 화장실 몰카 사건도 발생했는데, 이 사건은 비교적 '증거'에 의해 빠르게 처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서도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러니 내 사건에 대해서는 더더욱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가해자를 특정하고 연 학생 징계위원회에서, "그래도 선생님은 몰카를 찍히진 않았잖아.", "애 순하게 생겼던데."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있던 멍청이들에게 "제가 교무실에서 목이라도 매달았어야 제 상처를 아셨겠냐고" 소리치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그 안에서 나는 생존해냈다. 결국 그 학교는 떠나게 되었고, 오히려 행복해졌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아직도 그 꼴이기 때문이다. 저런 말이나 하는 구성원들이 트라우마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거기에 있었으면 내내 더 나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집단을 떠나 따뜻한 공감의 공동체에 와서 치유하며 다시 성장하고 있다. 다행이다.   


길게 내 트라우마를 고백한 이유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이겨내 온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살렸다'라는 레이디 가가의 증언처럼, 폴 콘티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힘을 전파한다.


폴 콘티가 담당한 환자들의 공식적인 사망원인과 실질적인 사망원인이 달랐다는 점은 굉장히 유의미하다. 트라우마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여가는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시기 때문이다. 이런 트라우마들이 이 책에서 수치심 등을 통해 스스로를 힐난하고 질책하게 하는 과정은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다. 동시에 익히 알아야 할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이 안 오고 그들에게 폭력 당한 사람이 온다고 하지 않나.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어두운 가풍을 형성해서 2차, 3차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내분비계 및 유전정보의 변형을 통해 마치 다른 신체적 질환들처럼 유전되어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들의 삶까지도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어떤 문화권의 문화가 세습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째서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한 가정의 문화이자 가풍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렇듯 심리적인 부분을 과학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또한 그 과학적인 흐름과 치료의 저변에서 '의료보험 시스템'과 함께 '교육의 힘'을 발견해주는 폴 콘티와 스테파니의 대화는 뭉클한 감동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게 했고, 동시에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바로 저자가 '시스템'을 지적한 것은 놀랍지만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구나 싶고, 병원과 학교는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시스템'의 문제 또한 내가 여실히 겪어낸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더 공감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개인보다는 전체를 고려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개인'을 다루는 병원이나 학교에는 일정 정도의 예외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런 융통성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적절한 교육도, 치료도 어려운 순간들이 온다. 그러나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유도 분명할 터, 시스템이 붕괴되면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존재할 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되기도 했다.


책을 읽을수록 스스로의 고군분투에 대한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책이었다. 트라우마 상황에 대한 치료를 결정했을 때,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한 발짝 나서야 했다. 거지 같은 가해자들로부터 꼭 그렇게 나서야 했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꾸역꾸역 버텼지만, 놀랍게도 버틸수록 자꾸만 내가 무력해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들이 나를 파괴하게 두지 않겠다는 것이 내가 용기 내어 치료로 나가게 된 첫걸음이었다. 마침 다행히도 그 길을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과 조언을 주신 분들 덕분에 안전하게 좋은 곳을 소개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는 수치심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 큰 위안을 받았다.


바야흐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었든, 혹은 전대에 겪었든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시대다. 아마도 내게 가해를 했던 학생들도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일은 그런 트라우마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드러나지 않는 트라우마를 드러나는 다른 차원의 가해 이유로 활용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푸른 숲 도서 중 #트라우마 시리즈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이 책과 함께 트라우마 전작 도서를 함께 읽으면(전작은 밀리에도 같이 있다) 좀 더 트라우마라는 것이 비단 보이지 않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라 신체적 질병과 같은 하나의 병리현상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치유하여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순히 사회 병리현상이구나가 아니라 이 병리현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을 파괴 해내가는지, 삶에 스며드는지를 면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푸른 숲의 시선은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느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만큼 더 많은 생각을 함께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주변을 구하면 세상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서가 힘들다면 이 책과 함께. 적어도 나는 나와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을 폴 콘티와 함께 구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이 당신에게도 가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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