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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Jul 05. 2022

언니의 혼란 레시피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읽고

 


자신이 맞은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덤덤하게 그 혼란을 정리해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걸 이 책이 해낸다. 이다혜 작가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최근에 책 추천 의뢰를 받았다. 글 조금 읽는 척한 것을 귀엽게 보셨는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시는 부장님께 책을 추천한 일이 집에 가며 생각해보니 유치원생들이 자신이 읽은 그림책을 내게 진지하게 추천한 느낌이라 갑자기 있는 척한 내가 부끄러워 없는 이불을 발로 뻥뻥 찼지만(유치원생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나는?), 나는 그때 자신 있게 이 책을 추천했다. 그랬더니 바로, "이다혜? 시네 21 기자 아닌가? 그 사람 글 시원시원하게 잘 쓰는데."라는 반응이 나왔다. 정확한 말이다. 이 책은 정말이지 시원시원하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는 말은 진리의 명제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기가 싫었다.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나는 지각해서 학교에 가던 8살 어느 날, 텅 빈 등굣길에서 어른이 되기 싫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막막해서. 어른이 되기 싫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른 안 하고 싶다. 또한 점차 넓어지는 시야가 넓어진 게 맞는 건지, 시야가 넓어지는 건 좋은 일인지조차 사실 모르겠다. 예전에는 시야가 넓어지는 게 마냥 좋은 줄 알았는데 요즘은 모를 수 있는 건 모를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살면 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생각 많이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 세계의 고민을 다 짊어진다고 해서 세계가 단박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필연적으로 우리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며, 혼란을 받아들여야 한다. 교실에서 우스개로 하는 말로 "나이를 먹을수록 망하는 스케일이 커져."라고 하는데 사실이다. 끽해야 시험이나 망하던 때랑은 이제 망할 수 있는 것의 차원이 다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남의 일일 줄만 알았던 일들의 '남'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럴 거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럴 때 이 책은 좋은 각성제가 되어줄 것이다. 가이드라고 하려다가 그 표현은 넣어두었다. 작가님이 '가이드 없음, 전진 가능'이라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봐왔는지, 작가님과 사뭇 겹치는 세대를 살아왔을(이라고 말하면 매우 건방진 느낌이지만) 내가 국어를 가르치며 많은 작품들을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는가? 고민해왔던 것에 대한, 막연하게 불쾌했던 기분을 작가님은 조곤조곤 자분자분 시원하게 표현해주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막 어 막 뭉글뭉글한 것을 언어로 표현된 것을 보았을 때의 시원함에 대해 다들 알 것이라, 바로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대체 '메밀꽃 필 무렵'이 왜 아름다운 소설인지, 똥을 서정적인 포장지로 싸면 똥이 아닌 게 되는 건지. 고전 시대의 프레임 속에서의 해학이 얼마나 폭력적인데 이걸 웃음 유발 장치로 그대로 가르쳐도 되는 건지. 밑줄 치고 이게 해학이다 하는 게 아니라 해학의 본질을 가르치고 현재의 해학을 찾도록 하는 게 맞는 거 아닌지. 그런 고민들을 해왔을 때 내가 유별난가 했던 것을, <무진기행>을 두고 쓰신 너무나도 잘 표현된 글로 만나니 가슴이 뻥 뚫린다. 글 잘 쓰고 싶다. 박식하고 싶다. 이다혜 작가님이 되고 싶다.(응?)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혼란은 사실 끝나지 않는다. 왜냐면 그 혼란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은 물고기만이 흐름을 따라간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만 그저 오래 있으면 어지럽고 지치기만 하니까.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세상을 넓혀나가면서 내 삶을 잘 살아나가고 나아가 작가님처럼 든든하고 멋진 여성 어른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할 사람으로서 더 많이 혼란하고, 더 많이 깨어지며, 중심을 찾아가는 글을 써서 눈물로 건네는 최초의 악수를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더 많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아니 남성들도 모두 다. 쉽고 설득력 있게 혼란 속 틈을 만들어주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조건 읽으시라. 혼란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 책을 타고 나오면 책장을 덮을 때는 좀 더 넓고 혼란스러우나 모두가 함께 행복하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단서를 조금은 얻을 수 있는 세계에 나와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 명쾌해서 돌아갈 순 없으니까, 꽉 잡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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