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phany

#12. I see you

소수자의 삶

by Da Hee

동양인이 드문 해외에서 오랜 시간 나홀로 동양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주목받아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는 덜 주목받아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때로는 내가 본의 아니게 연예인의 삶을 사는 것 같다가도, 노력하지 않으면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한국에서의 나와 이곳에서의 나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색다른 경험을 많이 시도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위 ‘잘나가는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속으로는 완벽하지 못 한 나의 약한 모습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나 자신을 더 옥죄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진짜 모습은 점점 더 숨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잘나가는 사람’처럼 보일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중간하고 부족한 나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마주하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마치 내가 나라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 아이가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듯, 그런 나를 소중히 보아주는 타인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헬스장 수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바디펌프>다. 1시간 동안 클럽 음악을 배경으로 전신 근육 운동을 하는 정신없이 힘든 수업이다. 온몸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강사가 소리친다.


I see you!



이 말은 몇 년 전, 비행기에서 아바타 영화를 보며 듣고 울었던 그 표현과 같다. 당시에는 이 말이 너무도 사무치게 다가왔고, 내 안의 깊은 외로움을 자극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주 이 말을 들으며 힘을 얻는다. 이 말은 단순히 격려가 아니라, 껍데기를 벗어던진 내 모습을 진정으로 알아본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문화가 다르고 행동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 나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된다. 나 역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너를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고, 나를 보려고 노력해 줘서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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