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
나는 말을 할 때 의미 전달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상대방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종종 머뭇거리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고,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사람은 그저 다른 인생의 단계에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걱정은 내 직업병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제대로 이해 못 한 사람을 이해시키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에 자꾸 설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어제 밸런타인데이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 보았다.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일본 친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그녀가 좋아한다고 한 부침개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부침개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고,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았다. 또,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 자체도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우리 남편도, 그녀의 남편도 장기간 집을 비운 상태여서 싱글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녀는 일본인답게 정시에 도착했고, 직접 만든 과일 푸딩 디저트를 가져왔다. 그녀는 젊은 일본 대사의 아내로 엘리트였지만, 영어 발음이 일본식이라 초반에는 서로 어색하게 버벅거렸다. 그러나 그녀가 일본어로 대화를 전환하면서 분위기가 풀렸고, 우리는 7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았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어느새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일본어로만 대화하게 된 점을 미안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어는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읽는 문화라서 서로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영어는 표현해야 하는 문화권의 언어다 보니 그동안 습관처럼 정형화된 표현으로 감정을 전달해 와서 그 깊이가 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처럼 동아시아인인 그녀가 한국어와 비슷한 느낌의 일본어로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할 때, 나는 몇 번이고 울컥하고 쑥스러워졌다. 만약 같은 말을 영어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서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꼈다. 나이도 환경도 비슷한 그녀와 나는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 삶에 대한 어려운 생각과 감정들을 언어화해서 풀어내야 한다는 고충, 개인적인 공간과 낮은 친밀도의 부담감을 극복하고,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은 생각과 감정들을 공감하며 인간 대 인간, 여성 대 여성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노력해서 이해하려는 것도 감사하지만,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영혼이 닿은 듯한 순간은 특별했다. 벅차오르는 충만함과 감사함이 우리의 눈을 촉촉하게 적시기도 했다.
그동안 가족, 일, 온라인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오늘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면서 대면 관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시간과 에너지를 따지면 대면 관계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깊은 주제를 대화로 나누는 것이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오늘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어떤 결핍이 채워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배웠다.
커리어, 남편, 어딘가에 매달린 삶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의 인간관계도 쌓아가고 싶다. 글로, 영상으로, 혹은 대면으로 나를 표현하며, 내 방식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눌까 한다. 내가 만든 음식 하나로 최소 두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효율성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