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phany

#16. Whatever you love you are

by Da Hee

나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유행하던 만화 프로그램은 빠짐없이 챙겨 보았고, 동네 아이들과도 왁자지껄 어울려 놀았다. 그래서 엄마는 밖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를 듣고 "우리 딸이 잘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고,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울며 다양한 모습의 나 자신과 마주하곤 했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나, 학교에서의 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늘 큰 차이가 있었다. 심지어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내 성격과 행동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다 서른이 되면서 내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타지에서 내 정체성에 대한 어려움을 겪으며, 나는 정말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 한국에서는 MBTI 16가지 성격 유형 테스트가 유행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더 이상 그런 테스트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어떤 것도 나라는 복잡한 존재를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3년 전, 한창 여행을 다니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문득 MBTI 테스트를 떠올려 뒤늦게 해 보았다. 결과는 INFJ. 그리고 INFJ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페르소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이해하고 있던 나 자신과 상당히 부합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나만의 것, 나와 잘 맞는 사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예전의 확고한 취향이라고 믿었던 선택들은 사실 나의 페르소나로 인해 왜곡된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싫증을 느끼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무엇을 선택하든 심사숙고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인연을 맺을 때도, 내 시간을 관리할 때도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3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통해 미니멀리스트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짊어질 수 없는 것은 아무리 갖고 싶어도 결국 찰나의 욕심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지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금 안정적으로 일하고 살림을 꾸리지만, 예전보다 더욱 신중하게 소비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다. 단순히 나에게 이로운 관계인지보다, 내 마음이 편안한지,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인지 꼼꼼히 따져 본다. 가끔 욕심이 생기거나 정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다시 후회하고 개선해 나간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나 사람, 혹은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내 선택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행복을 느낀다.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진짜 내 것이 곁에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 아마도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개인주의적이지만 철저하게 계산하고 이득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애매한 것들을 곁에 두는 것이야말로 이기심이 아닐까? 나는 나의 이익보다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나의 진정한 행복,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만족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내 인생의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듯 타인의 시간도 나로 인해 낭비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때 편안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도 페르소나에 속아 나를 잃지 않고,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진실한 삶을 살고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풍부하고 즐겁게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하고 내 자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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