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phany

#38. 엎드려서 십 년을 보다

by Da Hee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일상을 안일하게 살아갈 때도 승승장구할 때도 아니다.

진짜 위험한 순간은 과도기 안에서 정체되어 있을 때다. 과도기는 그동안 무심코 쌓아온 나의 모습과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옳은지를 점검하게 되는 시간이다. 동시에 과거의 에너지와 미래의 에너지가 맞부딪히는 지점이기에 혼란스럽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선택 앞에 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버티며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도 있다.

판을 갈아엎을지 폭풍우를 견딜지 혹은 우울한 나락에 잠식될지 어느 하나 쉬운 선택은 없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결단을 미루다 상황에 휘말려 떠밀리듯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 역시 또다시 에너지가 바뀌는 그 구간에 다다른 듯하다.

이유를 정확히 짚을 수 없는 불안감과 불만족감이 반복해서 고개를 든다.

본성대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나는 판을 갈아엎고 새출발하라고 속삭인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쉽고도 가장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쌓아온 블록 성을 굳이 초토화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마흔의 나는 이제 순간의 쾌락이나 허세를 내려놓고 조금 더 실리를 따지는 선택을 배워야 할 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방향키를 놓쳤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 자신과 내 배우자를 다그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젯밤, 문득 분명해졌다.

문제는 전부 나에게 있었다. 아니, 문제뿐 아니라 그 해결의 열쇠 역시 나에게 있었다.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인생을 해석하고 선택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대로 살아도 되고 수정하며 나를 다듬어 가도 된다. 모든 선택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곧 내 인생이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선택한 열쇠는 근본적인 접근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덮는 대신 나와 나의 문제를 뿌리부터 파헤쳐 보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날것, 나조차 보기 좋게 포장해 두었던 민낯과 마주한다.

그 안에는 악마도 있었고, 결코 귀엽지만은 않은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혼란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정의로운 장군 역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 안의 장군은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단단한 에너지다. 정의를 선택하고 약한 이를 보호하며 내 사람을 지킬 줄 안다. 무쇠처럼 묵직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고 대의를 위해 충성하며 때로는 기꺼이 몸을 낮출 줄도 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몸을 낮춰야 할 때다.



에너지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나는 엎드린 채로 그동안의 나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군의 위엄을 빌려 홀로 왕 흉내를 내거나 인기에 기대 군중 속에서 안주할 때가 아니다. 진짜 힘은 드러남이 아니라 축적에서 나온다.


내 안의 장군이 진정으로 단단해진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레 주변에서 군주로 떠받들 것이고 군중 속에서 소탈하게 웃고 있어도 민생을 아는 근자한 지도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 자신을 정확히 관철하고 꾸준히 발전시키는 일이다.



엎드려서, 십 년을 내다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7. 고립과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