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한명그룹 인턴 공채, 그리고 게임의 시작
민준은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씻지도 않았다.
밥도 안 먹었다.
‘지금이다.’
머릿속이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피로감이 없다.
눈도 또렷하다.
민준은 취업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악명 높은 화면.
“서류 탈락의 무덤”
“인생을 부정당하는 곳”
하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자… 어디 보자.’
그 순간, 머릿속에서 조용히 반응이 올라온다.
띠링.
[ 업무스킬 3. ‘전략 수립 스킬’ ]
[ 3-1. 추천 루트 수립 — 활성화 중 ]
민준은 키보드에서 손을 멈췄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시야가 자연스럽게 좁혀진다.
수십 개의 채용 공고 중
‘볼 필요 없는 것들’이 흐릿해지고,
딱 몇 개만 또렷해진다.
대기업.
그중에서도—
한명그룹.
민준의 시선이 멈춘다.
[ 202X년 상반기 한명그룹 인턴 공개채용 ]
“……”
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클릭.
채용 페이지가 열린다.
[한명그룹 인턴 공개채용]
모집 대상: 학력·전공 무관
선발 인원: OO명
전형 절차
서류
적성 검사
실무 면접
임원 면접
우수 인턴 정규직 전환 기회 제공
‘학력 무관…?’
민준은 잠시 멈칫했다.
‘이게… 진짜라고?’
보통은 써놓고 안 뽑는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정보가 자동으로 덧붙는다.
‘최근 이미지 개선 프로젝트.’
‘청년 고용 확대.’
‘형식적이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공정성을 내세워야 하는 상황.’
민준은 웃었다.
“좋아. 딱 좋아.”
그때 또 하나의 판단이 스쳐간다.
‘공채 말고 인턴.’
정규직 공채는
스펙 싸움이다.
학벌, 학점, 해외 경험.
하지만 인턴은 다르다.
‘현장형.’
‘실무 적응력.’
‘윗선 눈에 들 가능성.’
민준은 확신했다.
‘여긴… 들어가면 뒤집을 수 있다.’
자기소개서 창을 연다.
[ 업무스킬 2 ‘문서 작업 스킬’ 추천 ]
[ 튜터리얼 2-4 ‘자동 문서 최적화’ 추천 ]
[ 튜터리얼 2-5 ‘임원 취향 반영 문서’ 추천 ]
[ 튜터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평소 같았으면
첫 문장부터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뭘 써야 할지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가 보인다.’
민준의 손이 움직인다.
탁. 탁. 탁.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과장도 없다.
하지만 구조가 있다.
머릿속에서 ‘틀’이 먼저 잡힌다.
임원들이 읽었을 때 안 뽑으면 이상한 지원서라는 자신감이 든다.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민준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퇴고?
거의 필요 없다.
문장이
애초에 흔들리지 않는다.
며칠 뒤.
민준의 휴대폰이 울린다.
[ 한명그룹 인사팀 ]
“……?”
민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전화를 받았다.
“네, 김민준입니다.”
“안녕하세요.
한명그룹 인사팀입니다.”
민준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뛴다.
“서류 전형 합격하셔서
적성 검사 안내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민준은 잠시 멍해졌다.
‘붙었다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실감이 안 난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다—
“하.”
웃음이 터진다.
“하하하… 진짜네.”
그때, 민준의 머릿속에
익숙한 팝업이 떠오른다.
띠링.
[ 다음 난이도 진입 ]
[ 경쟁자 등장 예정 ]
‘아… 그래.’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가 진짜지.’
적성 시험장.
민준은 그곳에서
한눈에 봐도 다른 사람들을 마주친다.
비싼 정장.
자신감 넘치는 태도.
“SKY 출신.”
“미국 교환.”
“대기업 인턴 경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펙들.
민준은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다들… 잘났네.’
예전의 민준이었다면
이미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좋다.’
오히려 편안하다.
‘이래야 재미있지.’
시험이 시작된다.
문제는 어렵다.
하지만—
‘패턴이 보여.’
자료를 읽고,
핵심을 뽑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를 고른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업무 판단이네.’
민준은 펜을 멈추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고.
복도에서
한 무리의 인턴 지원자들이 모여 있다.
그중 한 명이 민준을 흘끗 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러게.
어디 대학이지?”
민준은 못 들은 척 지나친다.
그 순간,
머릿속에 조용한 예감이 스친다.
‘곧…
이 사람들하고 다시 만나겠네.’
그리고 이번엔—
‘같은 출발선이 아니다.’
민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회사란 곳은 말이지…
능력만 있으면,
생각보다 빨리 판이 바뀐다.’
한명그룹 본사 건물이
유리 너머로 보인다.
‘좋아.’
‘이제부터는…
업무로 압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