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는 나도 모르게, 거절하는 사람이 되었다.
교회을 가야하는 데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
- 그냥 혼자 가.
나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옷이 다 젖을만큼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으셨다. 나는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 아빠가 데려다 주시려고 했는데.
나는 아빠의 그 짜증섞인 표정을 이미 보았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거절의 의미를 알아채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 불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에게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에게 지금 바빠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에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나는,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부탁과 거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잘하지 못해도 함께 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지도 모르고
그는 내가 바쁜 걸 알지만 너무 어렵게 부탁했을지도 모르고
그는 내가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인 줄 알고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단지, 부탁이 싫었다.
그것이 내게는, 그저 불편한 일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기억을 오래 품고 살다보면,
그것으로 인해 다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 사실을 퍽 늦게 깨달았다.
오늘은, 많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