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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Jan 27. 2020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데미안, 헤르만 헤세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던 어느 날, 잊고 있었던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십 대에 읽었던 데미안은 내게 좀 불편한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었다. 성경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데미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절대적인 진리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다기보다는 질문을 하거나 반론을 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하면서 나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도 잠자코 순응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데미안은 내게 너무나 이상하고 별난 존재였다.


삼십 대 중반이 지난 지금 역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자꾸 꿈틀거리는데 그건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만이 진리가 아닐까, 하는 물음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정해놓은 어떤 것도 정답일 수는 없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정답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만 그의 정답이 나의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렇게에 결국 나는 나의 길을, 나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내가 가는 길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만 자금 내가 선택했을 뿐이다.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다만 유사한 것들을 같다고 치부하여 다수를 만들고, 다수가 옳다고 오인하여 그 범주에서 이탈했을 때 불안을 느끼는 것, 그것이 나의 선택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알에서 나오려는 투쟁,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하는 두려움. 하지만 그것을 깨뜨려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문장 기록


P 9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P 44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 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나의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P 85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너의 <허용된 세계>는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넌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 절반을 감추려고 했어. 신부님들과 선생님들이 그러듯이. 넌 그걸 감추지 못할 거야! 누구도 안 돼, 한 번 생각하기를 시작하고 나면 말이야.


P 108

지금의 이 <환한 세계>는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의 창조였다.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책임 없는 아늑함 속으로 다시 도망쳐 가고 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의하여 창안되고 요구된 새로운 예배, 책임과 자기 기율이 있는 예배였다.


P 116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P 131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P141

우리는 우리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고, 흐려지는 것을 보고, 분위기를 알게 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망막 위의 이 영상들이 바깥의 인상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내면의 인상에서 비롯된 거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디서도 이런 연습에서처럼 간단하고 쉽게 발견해 낼 수 없다.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관여하는지를.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똑같은 불가분의 신성이다. 바깥 세계가 몰락한다 하여도 우리들 중 하나는, 그 세계를 다시 세울 능력이 있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영상이 우리들 마음속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P 142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P 152

-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사물들이지. 우리가 우리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P 156

나는 피스토리우스가 나한테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의 말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따르기에 나 자신이 아직 성숙해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충고로 남에게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P 172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P 221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어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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