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 May 10. 2020

더 나아질 오늘을 위해

어둠 속의 희망, 리베카 솔닛

당신의 적은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행동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믿기 바란다.



 나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집어 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운명이었다. 코로나 19로 장기화된 사회, 경제 위기 속에서 과연 희망이 존재하긴 할까.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이 책의 이야기가 전부 내가 사는 세상 속 이야기와 참 많이 닮아 있어 좀처럼 책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수도 없이 플래그를 붙이고 밑줄을 치면서 그동안 내가 간과하고 회피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수치스러운 기분을 경험했다. 이 책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하지만 단순한 독서록으로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의 '세상'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심함으로 일괄했던 나에게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해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아주 작은 날갯짓 하나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을 나는 믿고 싶다.


저자는 실제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쉽게 잊어버린 '승리'에 대해 이야기한 후 이전과는 엄청나게 변한 현재의 세상을 평가한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을 제 목소리조차 세상에 내지 못하는 불구로 만드는 가정들(권력자들이 규범 지은 시민들의 나약함, 무력함)을 직시하여 우리가 다시금 사회에 적극적인 행동가가 되도록 돕는다. 


나는 그동안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불편한 세상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아왔다. 스스로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지금 현 상황에 순응하며 '언젠간 나아지겠지.'라며 방관하는 삶은 편했고 꽤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행동이, 열정이, 희생이 세상을 바꿨다. 굳이 알려하지 않았던, 꺼내보지 않으려 했던 진실과 맞닥뜨렸다. 충분히 알 수 있었던(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현실과 타협하고 싶고, 눈을 가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지난날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살기에는 세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나는 힘이 없지만 '우리'는 힘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되고, 우리가 움직일 때 세상은 변한다. 변화된 것이 근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움직였다는 사실은 분명 지금과는 달라진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아졌다. 어떻게 이 책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어제보다, 횡설수설이나마 책을 통해 달라진 나의 생각을 정리한 오늘이 훨씬 좋다.   





'어둠 속의 희망'은 문장 기록이 아닌 책의 내용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무관심했던 사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배움의 자세로 천천히 이동하며 정리하겠습니다.



들어가며: 희망의 근거

희망은 저항의 행동일 수 있지만, 저항이 희망의 충분한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이 2003년과 2004년 초 부시 행정부의 권력 행사가 최고조에 달하고 이라크 전쟁이 개시된 데 따른 엄청난 절망감에 맞서기 위해 쓰여졌다. 권력자들은 시민을 소심하고 허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바라보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착하고 슬기롭고 이타적이고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건들의 예를 들며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희망은 모든 것이 과거에도 좋았고 현재에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희망은 구체적 가능성과 결합된 넓은 전망, 즉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희망은 21세기가 경제 불평등, 정보독점 체계에 따른 개인정보 감시 능력, 기후변화 등의 현실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을 불러왔는지 기억함으로써, 그 현실을 직면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당면한 정치 상황의 내면에 관해, 그리고 우리의 정치적 입장과 참여 방식 아래 깔린 정서와 인식에 관해 직접 언명하는 첫 시도이다.


희망은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포용이며,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모두의 확신에 대안이다. 낙관론자는 우리의 개입 없이도 모든 게 잘되리라 생각하고, 비관론자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므로, 양쪽 다 행동하지 않아도 될 구실을 얻는다. 희망은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 어떻게, 누구와 무엇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해도)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처음에는 터무니없거나 우스꽝스럽거나 극단적이라고 여기던 관념들을 두구 사람들은 차츰 자신이 그것을 항상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사람들이 거의 기억하지 않는 건, 부분적으로, 변화가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눈에 띄게 만들고 공개하는 건 일쑤 치유의 첫걸음이거니와, 오랫동안 용인되던 것이 용인될 수 없다고 인식되고, 간과됐던 것이 분명히 드러남에 따라 정치적 변화가 문화적 변화를 뒤잇는다.


한 번의 승리가 이제 모든 것이 영원히 괜찮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저 빈둥거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행동가들은 승리를 인정하면 사람들이 투쟁을 그만둘까 두려워한다. 내가 오랫동안 더 두려워해 온 건 사람들이 승리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거둔 승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포기하고 귀가해 버리거나 애당초 시작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승리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이자 우리가 때로는 승리한다는 증거이며, 멈추지 말라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는 격려다.


희망은 행동의 기초일 따름이지 행동을 대신할 수 없다. "직면한다고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직면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제임스 볼드윈)" 희망은 우리를 출발점에 세워주고, 노력은 우리를 완주하게 해 준다.


"기억상실이 절망을 빚어내듯 기억은 희망을 빚어낸다.(월터 브루거먼)" 희망은 비록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희망의 근거는 과거에 대한 기록과 회상 속에 깃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기억상실이 절망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현상유지 세력은 현상이 불변적이고 불가피하고 난공불락이라고 사람들이 믿기를 바라거니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관한 기억의 결핍은 이런 관점을 강화한다. 달리 말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모르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고,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된다. 세상이 항상 좋은 쪽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만 변하긴 변하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 변화의 과정에서 한몫할 수도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희망이, 기억,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집단적 기억이 등장한다.

기억상실 때문에 겪게 되는 또 한 가지 고통은 긍정적 변화와 대중의 힘에 대한 실례의 결핍, 우리가 해낼 수 있고 실제로 해냈다는 증거의 결핍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과거를 지배하는 일은 과거를 아는 데서 시작되고, 우리가 누구였고 무엇을 했는가에 관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장차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양 짓는다.


궁극적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는 우리가 배울 점이 무척 많지만, 그 투쟁은 통째로 망각되고 만 듯하다. 사람들은 따져보지도 않고 변화에 적응한다. 우리는 이런 승리를 호칭기도나 낭송문이나 기념비로 만들어 모든 사람의 마음속 랜드마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당신이 이야기하고 꿈꾸는 혁명을 이루었다고 가정해보라. 당신 편이 이겨 원하는 모습의 사회를 갖게 됐다고 가정해보라. 당신 개인은 그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살고 싶은가? 지금 당장 그런 식으로 살기 시작하라." 그의 말은 작고 일시적인 승리도 소중하다는, 총체적 승리가 부재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할 때에 부분적 승리도 소중하다는 주장이다. 구(舊)좌파 절대주의자들은 승리는 일단 찾아온다면 총체적이고 영구적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그건 승리가 과거에도 불가능했고 현재에도 불가능하고 미래에도 불가능하리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실상 승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크고 작게, 흔히는 점증적으로, 그러나 널리 묘사되고 예상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승리의 순간은 예고 없이 스쳐 지나간다. 실패의 순간은 좀 더 쉽게 포착된다.


함께라면 우리의 힘은 매우 강력하며, 우리에게는 잘 전해지지 않고 잘 기억되지 않은 승리와 변혁의 역사가 있다. '그래, 이전에도 여러 번 그랬으니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역사를 지녔다.



01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마저 어두워 보일 때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변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은 지구온난화나 지구적 자본 같은 악몽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에 관한 꿈 때문에도 변했고, 우리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것들 때문에도 변했다. 우린 변화를 저울질해보지 않은 채 그 변화에 적응하고, 문화가 얼마나 변했는지 잊어버린다.(ex. 동성 간의 혼인권)


인과론은 역사가 전진한다고 가정하지만, 역사는 군대가 아니다. 그건 서둘러 옆걸음 치는 게이고, 돌을 마모시키는 부드러운 물방울이며, 수세기 걸친 긴장 관계를 깨뜨리는 지진이다. 때로 한 사람이 어떤 윤동의 영감이 되거나 한 사람의 말이 몇십 년 뒤 그리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열정적인 몇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때로 그들이 거대한 운동을 촉발하여 몇백만이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 그 몇백만을 똑같은 분노나 똑같은 이상이 뒤흔들면, 변화는 마치 날씨가 바뀌듯 우리를 덮친다. 이런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상상에서, 희망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희망은 행동을 요구하고 행동은 희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책의 전개
쉽게 간과되는 승리 몇 가지를 살펴본 후(승리의 실례) 우리가 살고 있는 엄청나게 변한 세상을 평가해보고자 한다(변한 세상에 대한 평가). 아울러, 많은 사람들을 제 목소리조차 세상에 내지 못하는 불구로 만드는 가정들(권력자들에 의해 치부돼버린 시민들의 나약함, 무력함)을 내동댕이치고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세상 속 '일곱 빛깔 무지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