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문학동네 북클럽 3기에 가입하고 언제 책이 도착할지 매일 기다렸다. 나는 편독이 심해 주로 세계문학이나 3대 수상작(노벨문학상, 콩쿠르상, 부커상) 작품들을 읽었던 터라 한국소설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2016년 4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떤 작가가 쓴 칼럼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건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간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다. 지금 현실을 같이 겪어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반영하는 소설, 그러니 그건 소설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었다. 생각의 전환으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북클럽 신청 일주일 만에 도착한 올해의 책 또한 단숨에 읽혔다.
총 7편의 단편 소설, 각각 40~50쪽의 분량이지만 하나같이 내용은 묵직했다. 누군가는 읽는 내내 통쾌해 할 수도 있고, 다른 이는 불편해 할 수도 있는 소재들,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이야기들의 울림들이 남달랐다.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놀랐고, 그들의 필력에 감탄했다. 소설을 소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깊이 생각하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범들과 뒤엉켜 버린 관계 속에서 '나'도 '너'도 없는 삶,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힌 채 살아가는 삶.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엄마에게는 온갖 짜증을 부리면서도 어머님께는 한없이 예의 바른 맏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늘 그런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 무뎌져 버린 나를 발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늘보다 좀 더 괜찮은 날들이, 관계들이 생겼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 하지만 나아지길, 달라지길 원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사는 세상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불편함'은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더 세심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과 눈이 생겨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을,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한 가지 색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 다른, 서로의 다양한 색채들이 함께 반짝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문장 기록
P 75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P 79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내게 넌지시 말했다.
P 100
어떤 사실은 종종 삶을 매우 슬프게 만든다. 나를 억압하는 인식들은 어떤 구조 속에서 사실로 굳어졌을까. 그것이 삶을 망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만큼 부정하고 또 인정해야 할까.
P 126
나는 내 생각이 아닌 타인의 조언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데에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째서 내가 나다워야 하며 어째서 내가 예외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P 161
원래 삶이란 '나'만의 단독 작업이 아니라 그들과 필연히 연루되어야만 가능한 공동의 것이므로.
P 191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은 수는 없더라고."
P 205
행복은 사람이나 대상에 깃든 속성이 아니다. 행복은 확실히 행복을 줄 것으로 인식되는 대상에게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P 232
어떤 진실은 슬프지만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 354
한 개인을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무신경함이 곧 우주의 무한함을 감각하지 못하는 무지함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기이한 전율에 잠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