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라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알려주었다. '가족 같은 타인과 타인 같은 가족'이라는 문구가 어색하지 않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읽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도무지 책장에 넣을 수 없었던 책,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을 어지럽혔던 책 <달과 6펜스>를 정리할 수 있게 된 것도 '누군가를 안다는 것'에 대한 답을 얻었기 때문일 거다. <달과 6펜스>는 40대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으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가족을 떠나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강력하고 광기 어린 예술의 혼을 담아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어 삶에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그의 모습이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속물적인, 세속적인 시각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예술가의 삶이 더 훌륭한 삶이라고,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는 불편함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과연,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이 정말 훌륭한 예술가의 삶이었던 것인가.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나에게 '예술가'는 창조적인, 고차원적인, 뛰어난, 시대를 앞서 간, 비상한 존재였다. 이상을 좇아 살아가기에 그들의 작품에는 힘이 있다고, 보이는 작품만이 예술이라고 믿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든 예술가을 전설로 만들었다. 부끄럽게도 그 이면은 보지 않았다. 보려 하지 않았다. '예술가'도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수많은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뭔가 대단한 걸 아는 양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책의 첫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싶다.
문장 기록
P8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P10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다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P17 작가란 글 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19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P28 동정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하나의 미덕이긴 하나 그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미덕을 남용하는 수가 많다.
P56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P85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 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P197 습관이 오래되면 감각도 무뎌지게 마련이지만 그러기 전까지 작가는 자신의 작가적 본능이 인간성의 기이한 특성들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때로 도덕의식까지 마비됨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때가 있다. 악을 관조하면서 예술적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약간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정직한 작가라면,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기보다 그 행위의 동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고배할 것이다.
P256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네.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기보다 내 속에 있는 뭔가 강한 충동이 그렇게 한 거지.」
P259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한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P279 어떤 일을 시도해서 그걸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우리 생활은 소박하고 순진합니다. 야심에 물들 일도 없고, 자부심을 가진다고 해봐야 그건 우리 손으로 해낸 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런 자부심뿐이고요. 악의를 가질 일도 없고, 부러움으로 속상해할 일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