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 Nov 06. 2021

매일 태어나고 죽는 찬란함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내가 아직 어리고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아버지가 나를 맨해튼에 있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데려가 디오라마*를 보여주었다.

*디오라마 diorama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 풍경, 도시 경관 등 특정한 장면을 축소해 만들어 둔 모형



요즘 들어 자발적인 독서가 어려워지면서 강제성(!)을 띈 프로젝트에 도움을 받고 있다. 출산 전에는 카카오 프로젝트 100을 통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권을 꾸역꾸역 읽었고,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완독 챌린지 '독파'로 사샤 세이건의 책을 읽었다. 자기 주도적 독서가 버거워지면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도 여간 곤욕스러웠다. 아마도 반대 상황이었다면 선정된 책들 중 고르는 것이 제한적이라고 여겼을 텐데 이번에는 이런 제한이 참 고마웠다. 인간은 참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 덩어리다.




이 책은 『코스모스』의 가족 버전이다.


이 책의 작가 사샤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의 딸이다. 내가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책 뒤표지에 적힌 저 말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아직도 손을 대기 어려운 책인데 칼 세이건의 딸이 쓴 에세이에는 어떤 우주가 담겨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또한 '태어남'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16장의 주제, 책 서두에 '내 삶의 빛, 헬레나 하야에게'라는 문장도 현재의 내 상황에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과학자인 부모로부터 논리와 증거, 증명을 통해 배운 우주는 유한하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고 위대하고 아름다움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도 이러한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봄이 있으면 겨울이 있고,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고, 그렇게 매일이, 매월이, 매년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특히 2장의 '한 주의 의식'과 12장의 '다달의 의식'을 읽으며 아가와 함께 우리 가족만을 위한 새로운 의식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보다 풍성해지고 더 많은 추억들이 쌓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도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P 159). 그러니 죽어 사라져도 우리는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존재들은 서로를 느낄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다. 매일 죽지만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찬란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오늘을 멋지게 살고 싶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기에. 





문장 기록


P74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는 마음에 드는 부분,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을 받아들인다. 훔치거나 유용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경의를 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시대의 것을 새로운 무언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무언가와 결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흡수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생각들 대부분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어떤 주제와 상징들이 수천 년을 넘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근사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P97 불확실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얼버무리거나 덮어버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많이 알려서 애쓰는 도중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음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P107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P160 우리는 누군가의 먼 미래이자 누간가의 오래된 과거이니까.


P178 무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탐구하고 검토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도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바비큐와 불꽃놀이도 독립을 축하하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나는 진정한 독립기념일 의식은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에게 기존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왜 현실이 이러한가 물어보라. 스스로에게도 물어보라. 일이 다르게 풀릴 수도 있었을까? 


P265 어둠과 죽음이 다가온다.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다가오고 있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야 한다.


P278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P290 단식하는 의식에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다시 먹게 되면서 내가 가진 것을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 소중히 느끼게 되는 기회다. 단신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라면 단식을 깨면서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P359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다는 것의 오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