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12월 31일,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 올해의 마지막 책은 어떤 책이 될까, 스스로 궁금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었지만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책장에 방치된 책을 꺼내 들었고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 바로 '밤으로의 긴 여로'였다. 민음 북클럽에 가입만 했지, 책은 읽지도 못하고 어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가입 후 사이트에 한 번도 못 들어갔으니, 헬스장 등록만 하고 단 한 번도 운동하러 가지 않은 것과 같다. 다행히도(!) 올해가 가기 전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마음의 짐이 조금은 줄었다(또 다른 에디션 북 역시 비닐채 그대로 방치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의 자전적 소설인 '밤으로의 긴 여로'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가정의 평범한 하루라고 말할 수 있다. 단 하루의 일상이지만 가족들의 대화 속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곯아버린 다양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서로를 위하는 듯 행동하지만 수면 아래 부유하는 문제들이 서로를 갉아먹는다. 이러한 가족의 비극(내용)은 무겁지만 대화체로 이루어진 극소설(형식)이라 그런지 주변에서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나 각 인물들의 말투, 입고 있는 옷들까지도 상상이 되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듯 말이다.
갈등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숨겨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여있던 것들은 악취가 날 정도로 썩어 처음보다 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결국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야 만다. 가장 작은 사회인 가족은 한 인간의 삶의 근간이 된다.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2녀 중 막내로'로 시작했던 어릴 적 자기소개서의 '화목한 가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유진 오닐은 이 소설을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살아가는 동안 직면할 수 없었던 그의 아픔을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온전히 맞닥뜨린 그는 결국 삶이란 회복으로 가는 여정임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비극 같은 이 소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희극이 되길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