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일단 사과부터 해야겠다.
“어린이들, 미안합니다. 그동안 하나의 인격체로, 한 명의 구성원으로 존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을 꽤 오래 했다. 하지만 어린이를 귀여워했고, 그들을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 가르치고 알려줘야 하는 존재로 대해왔음을 고백한다.(이제 와서 고해성사?) 어린이를 통해 감동받고 배우게 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건 단지 내가 어릴 적 느꼈던 것을 상기시켜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역시 어린이는 맑아.’ 이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작가는 독서교실에서 만난 어린이들과의 일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어린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소개한다. 어른들이 기다릴 줄만 안다면 어린이는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존중한다면 그들은 누구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명제와 같은 이 문장이 떠올랐다. 문장이 주는 무게감을 새삼 느꼈다.
책을 읽고 난 후 오랫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린이 었던 시절의 당신은 어떤 어른의 거울이었을까?' 답을 내리기 않고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을 만나는 어린이에게 어떤 어른으로 비추고 싶은가?' 수많은 답을 책에서 찾았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p.20).',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p.45).',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p.72)',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p.102)',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존재한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p.202).',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p.212)',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을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p.219)',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p.227).',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이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p.236).',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 있다. 나라의 앞날은 둘째치고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집시다(p.247).'
3월 9일, 나는 '어린이'들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어른의 일이다. 꼭 투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