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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Oct 26. 2024

엄마가 너무 좋아

요즘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문장

엄마, 나 엄마가 너무 좋아.



요즘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문장.


처음 시작은 아빠와 자기 싫은 어느 날이었던 거 같다. "엄마 피곤해서 자야 해." 남편이 아이에게 말하자 갑자기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달려와 "나, 엄마가 너무 좋아. 아빠는 안 좋아." 이렇게 말하는데 너무 사랑스럽고 당장이라고 내가 안방 침실로 아이를 데려가 재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마음만). 그렇지만 금세 이성을 찾고 "응, 엄마도 너무 좋아해. 잘 자고 내일 만나자."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남겨두고 떠나는 궁댕이가 너무 귀여웠다. 그러고는 방으로 갔다가 아이가 다시 총총 달려왔다. "자, 엄마 이거 안고 자~" 나를 타이르 듯 하얀 토끼 인형을 건네주고 갔다. 혼자 외롭지 말라는 듯이.


아이는 엄마의 "안 돼."는 절대 안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가끔은 너무 쓸데없는 데에 단호함을 내세우는 것 같아 나도 헷갈리지만 웬만해서는 번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 쉽지는 않다. 덕분에 이제는 일주일에 2번은 아빠랑 자니 그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어.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엄마, 나 엄마가 너무 좋아. 엄청 좋아. 아빠는 조금, 조금 많이 좋아."라고 말했다. 부사를 이렇게 적절하게 사용하다니, 점점 언어 사용이 세밀해지는 걸 보면 쑥 커버린 것 같아 조금 아쉽다. 그래도 "엄청? 우와, 엄청이라는 말도 아는구나. 대단하다." 칭찬해 주고 "아빠는 조금 많이 좋아? 근데 아빠는 엄청 엄청 좋아한대." 하고 일러준다. 여기서의 '조금 많이'는 '조금만' 좋다는 말과 같다. 근데 자기도 좀 민망하지만 여기에 '많이'이를 붙인 게 좀 웃기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먼저 일어나 씻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을 벌컥 열더니 또다시 "나 엄마 너무 좋아." 하는 거다. 근데 이건 기분 좋게 말하는 '엄마가 좋아'가 아니라 약간 짜증 섞인 투였는데 왜 엄마가 나 안 깨우고 아빠가 깨웠냐, 이걸 말하는 거다. 매일 아침마다 내가 깨워주는데 내가 씻으면서 남편이 깨워주니 후다닥 도망치 듯 침대에서 내려와 나한테 달려온 거다. 남편은 아이의 잦은 냉대와 거절에 매일, 여전히 상처받는다. 나도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아이에게 적당히란 없다. 


얼마 전 어린이집 상담 때 선생님의 말을 다시 한번 전해주었다.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누가 제일 예뻐?" 물어보면 자기 이름을 말해요. 그런데 단이는 "엄마"라고 대답해요.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거죠.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5~6세가 되면 아빠와의 활동을 좋아하게 돼요. 그때가 되면 또 크니까요. 그러니 아버님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종종 아빠와 단둘이 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시고요. 그럴 때는 '데이트'라는 말로 특별한 시간을 갖는 거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어머님, 원래 딸들은 엄마를 좋아해요. 저희 딸도 여전히 그렇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약간의 '희망(고문)'을 남겨주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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