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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Sep 29. 2016

엄마가 된 친구

대견하면서도 두려운

 월요일 밤 11시, 한주의 시작이 꽤나 피곤했던 걸까.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양 어깨에는 노트북 가방과 숄더백을 메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너무나 고요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길고양이들도 모두 사라진 밤이었다. 느린 발걸음이었다. 익숙한 길들을 지나면서 실은 어떤 것도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이유는, 엄마가 된 친구의 모습이 반복 재생되는 영상처럼 머릿속을 꽉 채웠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이른 퇴근이었다. 일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15분 거리에 사는 친구의 집에 갔다.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결혼이 꽤나 큰 부담이 되었던 나는, 3살과 1살의 두 여자아이를 키우는 결혼 6년차 주부인 K에게 SOS를 청했다.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만난 이후, 첫 만남이었다. 제법 말문이 터진 첫 째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배꼽인사를 한 후 빠르게 TV에 시선이 꽂았다. 엄마 품에 안긴 둘째는 제법 사람처럼 고개를 세운 채 앉아 있었다. 아가들이 커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K는 돈가스를 만들어주었다. 큼지막한 등심은 고르게 망치질이 되어 있었다. 밀가루를 입혀 계란 물에 담근 후 빵가루를 묻힌 돈가스는 기름에 치익_ 소리와 함께 튀겨졌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함께 보던 첫째 아가는 밀가루, 계란, 삐앙가루(빵가루라는 말은 처음이라서 계속해서 이거 뭐야, 이거 뭐야, 반복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한껏 즐거워보였다.) 옷을 입힌 돈가스를 보며 좋아해, 라고 말했다.     


첫 째 아가를 먹이느라 정작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의 밥공기는 비어져 있었다. 그건 마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먹어야 하는, 전쟁통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흙을 파먹는 것과 같은 치열함이었다. 업힌 둘째, 그리고 첫 째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친구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K, 그녀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언젠간 내게도 찾아올 모습. 대견하면서도 두려운, 엄마의 모습.     


@사진출처, Pixabay

@글, 앨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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