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처럼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시간

by 가현

J는 꽤 체격이 좋다. 키는 184, 몸무게는 90kg가 조금 넘는다. 한때 100kg가 훨씬 넘었던 적도 있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너무나 건장한 나머지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J는 건강에 약간의 이상이 생겨 체중조절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달렸다. 아마 잘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잘 달리는 편은 아니니까. 하지만 달린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그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공통된 취미를 갖는다는 것

달리기.jpg 2017년 4월 1일, 공원을 달리고 난 후에 늘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연애시절 J를 따라 달린 적이 있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무리 없이 2킬로 코스를 두 바퀴 달렸다. 그리곤 얼마 전까지 그보다 더 많이 달려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탓에 2킬로 한 바퀴가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결혼이 늦은 편이었고 2세 계획도 뚜렷하지 않았기에 J는 늘 우리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했기에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말 아침마다 나는 핑계가 많았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 혹은 너무 더워서, 어제 너무 피곤해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빨래가 너무 많고, 집 청소를 해야 해서. 이유는 너무나 다양했다. 하지만 J는 웬만해서는 함께 달리기를 원했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늘 세월아, 네월아 하며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몸을 풀어주고 달리기 시작하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렇게 1년간 J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10KM에 도전하다


목표 없이 달리다 보니 아무래도 속도나 거리가 늘지 않았다. J의 추천으로 달리기 어플을 활용하면서 거리에 따른 구간별 속도를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1킬로에 7분 정도의 속도, 이 정도면 빠른 속도로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이었다니. 스스로 한탄했다. 다행히 기록이 남겨져 약간의 책임감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떤 오류에 의해서 나의 1킬로 평균 속도가 5분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J군의 기록에도 남겨져 있지 않은 마의 5분대의 기록. 아마 이날,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를 검색했던 것 같다. 온전한 나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J를 이긴 것에 흥분해서. 그렇게 첫 마라톤을 신청하게 되었다. 정말 덜컥, 신청해버리고 말았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고작 2번 달린 것이 전부였다. 10킬로는커녕 5킬로도 달려본 적이 없는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로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전의 날. 둘 다 토요일까지 근무를 한 탓에 피로감이 높아 일어나는 것부터가 곤욕이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잠실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흐린 날씨에 약간의 비가 흩뿌려져 있었다. 컨디션부터 시작해서 날씨까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가는 내내 연습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마라톤을 신청한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이미 출발한 이상, 우리는 달려야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의 첫 마라톤 도전이었으므로.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참가했다. 의상에서부터 전문가 포스가 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재미 삼아 나온 이들도 있었다. 페이스메이커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깜짝 놀랐다. 연신 두리번거리는 내게 J는 몸을 풀라고 했다. 늘 적당히 달렸기에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는데 경기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기엔 조금 창피했다. 풀코스부터 릴레이 풀코스, 하프코스, 그리고 10킬로 코스로 출발 순서가 정해졌다.(아마도 어디에서나 이런 순서겠지만) 긴장감이 조금 가셨다. 각 코스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기다리다가 우리 순서가 되었다. 5, 4, 3, 2, 1, 출발!


KakaoTalk_20171227_003552846.jpg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었다.


우르르, 타인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며 나는 완벽하게 나의 페이스를 잃었다. 초반 페이스가 이렇게 빨랐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호흡이 편안했다. 평소 초반 호흡이 늘 불안정했는데 희한하게도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잘 달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를 추월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추월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안정된 페이스로 달리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초반 5킬로까지는 J군과 함께 달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나와 J군과의 사이가 벌어졌다. J군이, 뒤쳐지기 시작했다. 5킬로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을 상상도 못했다. 처음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J군이 있었는데 7.5킬로를 넘어 뒤를 돌아보니 J군이 보이지 않았다. 커플 레이스를 신청했기에 두 사람이 함께 결승선에 들어가야지만 기록이 인정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 달렸어야 하는데, 나 혼자 신나서 마구 달려버린 것이다. 어차피 금방 올 건데 하며 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J 군이라면 어떘을까. 날 혼자 내버려둔 채 혼자 달려갔을까, 아님 내 속도에 맞춰 함께 달렸을까?


우리의 기록 01:09:17.70
KakaoTalk_20171227_003531667.jpg 완주 후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태. 그래서 선물로 받은 소보로빵과 사과주스가 담긴 비닐봉투는 야무지게 들고 있다.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J군을 기다렸다. 그를 만나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선을 앞두고 나는 J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1시간 9분 17초. 우리의 기록이었다. 마라톤을 마치고 대회에서 준비해준 어묵탕과 막걸리를 마셨다. J군은 내게 패한 것에 개탄했고 나는 내가 이겼다며 내내 잘난 척을 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것에서는 내가 완벽하게 패했다는 것을.


우리는 경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달리기 위해서 마라톤에 참가했다. 우리의 목표는 그것이 전부였다.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는 것,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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