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1주년을 기념하는 우리의 자세

by 가현

11월 19일, 우리가 결혼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6년의 연애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연애 선배보다 결혼 선배가 더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연애와 결혼은 결 자체가 달랐다.




내가 한 것은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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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결혼 준비를 일찍 시작한다. 원하는 예식장에서, 원하는 날짜에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예약해야 하고, 신혼여행 패키지 또한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혼식 날짜를 정해놓고 프러포즈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J와 내가 작년 이맘때 준비했던 것은 결혼이 아니라 그 틀에 박힌 한국식 '결혼식'이었다. 오랜 연애기간 덕분에 양가 집안에서는 이미 결혼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기에 우린 먼저 대략적인 결혼 날짜를 정해놓고 결혼식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결혼식장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바로 '교통'과 '음식'이었다. 교통에서 주요한 점은 예식장 근처의 혼잡도, 주차, 대중교통을 꼽을 수 있고 음식의 경우에는 반드시 맛있어야 하고, 다른 예식과 피로연장이 겹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서도 우리가 정한 예산에 부합하고 나와 스타일이 맞는 예식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고르지 않으면 생각해 놓았던 결혼 날짜를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J와 나는 엑셀표를 만들어 5곳의 예식장을 비교 분석한 후 어렵게 예식장을 예약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진이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결혼 전날까지 결혼식의 긴장을 놓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객수' 때문이었다. 대략적인 인원이 나와야 플래너에게 전달해서 음식을 준비할 텐데 결혼을 해봤어야 알지, 도통 몇 명이나 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300명 정도로 예상하고 음식을 준비했다가 그보다 더 많은 하객이 오면 음식이 모자랄까 봐 걱정이었고, 그보다 적게 오면 준비한 음식값을 지불해야 하니 그것도 고민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걱정거리였다. 아마도 나의 결혼 스트레스의 원인은 결혼 그 자체보다 이런 부수적인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 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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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면 어떻게 살고 싶어?


- 음, 자기 전에 하루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같은 취미 생활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주말에는 연애시절처럼 데이트를 했으면 좋겠어. 나는 매일 아침은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주말에는 같이 만들어먹자. 그리고 같이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리고...


결혼을 준비할 때 J는 내게 물었었다. 나는 그저 그런 일상적인 것들만 생각했다. 그게 나의 한계였으니까. 경험해보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서른 넘은 결혼이었고, 주변에 이미 결혼을 한 친구들도 여럿이기에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1년 전에 내게 결혼은 여전히 환상적인 것이었다. 결혼은, 현실이었다. 정말 양말을 뒤집어 벗고 안 벗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사소한 대화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웃고 싶지만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나의 환상 속에 J는 이런 사람이었다. 아침, 알람 소리를 들으면 바로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다. 돌아오는 길에 사과 하나를 사서 먹는다. 집으로 돌아와 씻은 후 어제 준비해 둔 옷을 입고 출근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방 정리도 한다. 자기 전에 씻으면서 가볍게 화장실 청소를 한다. 자기 전에 자기 전에는 나와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침대 맡 스탠드 불을 켜고 책을 조금 읽다 잠이 든다. 하지만 현실의 J는 달랐다. 당연한 결과였다. J는 종종 내게 묻는다. 아침은 안 해주냐고. 그것 역시 J의 환상일 것이다. 나의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할 것이라는 환상. 나는 이런 환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지난 1년을 지내보며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서로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좋은 결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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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연애 시절, 우리의 시작은 늘 멀끔하게 꾸며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의 모습을 본다. 알람이 몇 번 울려도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마주한다. 연애 시절, 우리는 운동복 차림으로 만나 함께 공원을 달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운동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J가 나를 설득해야 한다. J가 화를 내기 일보 직전에 나는 일어날 것이다. 연애 시절, 우리는 자기 전 통화를 했다. '이제 뭐할 거야?' 그럼 나는 책을 읽는다고 했고 J는 바로 잠을 잘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워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었던 짤을 보며 킥킥거릴 것을 알고 있다.


좋은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의 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싸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나는 이런 것들을 깨달았다. 이제야 결혼을 제대로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의 진짜 결혼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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