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의 아지트

만화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가현

우리 집 근처에는 작은 만화방이 하나 있다. 골목 사거리의 건물 2층에 위치한 만화방은 지나다닐 때마다 눈에 띄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만화카페가 생겨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는데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어릴 때도 만화책 대여점에서 빌려보기만 했지, 만화방에 가본 적은 없었다. 내겐 진입장벽이 높은 셈이었다. 작년부터 J에게 가보자고 했지만 일부러 가게 되진 않았다.


어제는 집 근처에서 J와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이사한 동네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주변을 산책하다 들어선 곳이었다. 동네 음식점이었지만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네의 시끌시끌한 맛집이라니. 부천에는 대부분의 음식점이 로데오거리에 몰려 있었고, 80~90%가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성산동에는 오래된 음식점부터 주인의 개성이 느껴지는 음식점까지, 실로 재미난 풍경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에 또다시 만화방이 눈에 띄었다.


"만화방 가보고 싶다며?"

"응, 밤새 만화책 읽어보고 싶어. 근데 맨날 일찍 불 꺼지던데?"

"그럼 한 번 물어나 볼까, 몇 시에 끝나는지?"

"응, 좋아!"


나는 신이 나서 만화방이 있는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문 앞에는 금, 토요일은 새벽 5시까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시간만 확인하려고 했는데 J가 선뜻 만화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라면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TV에서만 보던 그 만화방 모습 그대로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저희가 처음 왔는데요."

"기본 1시간에 2,700원입니다. 나가실 때 정산하시면 되고요, 정산은 분 단위로 계산됩니다."


우리는 카드 한 장을 받았다. 남자 손님 두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라면을 먹으며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들어선 만화방에서 어떤 만화책을 읽어야 할지, 한참을 책장 앞에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어릴 적 유난히 좋아하던 Al YAZAWA의 'NANA'가 눈에 띄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유난히 이 작가의 만화를 좋아했었다. 1~5권까지 자리에 가져가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라? 이 책, 이렇게 유치한 내용이었나. 어릴 때는 여성스러운 고마츠 나나가 참 예뻤는데, 지금 읽어보니 자기의 꿈을 찾아가려는 오사키 나나가 훨씬 나았다. 1권 다 읽고 나니 왠지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쌓여있는 'NANA' 옆에는 J가 가져온 '배가본드'라는 만화책이 있었고 J의 손에는 '용랑전'이라는 만화책이 들려 있었다. 역시, J는 무협이군. 재미있게 읽고 있는 J를 두고 나는 다시 책장 앞으로 갔다.

KakaoTalk_20180812_194904514.jpg J의 만화책 '배가본드', 나의 만화책 'NANA'와 '미스터 초밥왕'

어릴 때 읽었던 만화책은 대부분 순정만화였던 터라 지금 읽으면 전부 손이 오글오글 할 것만 같았다. 뭘 읽을지 한참을 돌아보다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미스터 초밥왕'을 골랐다. 얼핏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주인공이 왜 초밥 요리사가 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련을 겪는지를 보니 이거, 유치해도 너무 유치했다. 읽는 내내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세상 모두에게 냉담한 사람이 주인공에게는 힘이 되어주고, 시련 중에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내는, 이 유치하지만 매력적인 만화책에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쉽게, 초밥에 대해 설명해주는 작가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재미있다. 몇 권 읽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잘도 흘러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KakaoTalk_20180812_194858623.jpg 만화방에서는 이렇게 널부러져야 제 맛이지!

"이제 그만 갈까?"

"응, 다음에 또 올 거지?"


만화책에 흠뻑 빠져있어 몰랐는데 어느덧 손님이 바뀌어 있었다, 두 명의 여자로. 한 명은 만화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어? 여기서 일해도 되겠는데?"

집 근처에 새벽까지 하는 커피숍이 없었는데, J는 그새를 놓치지 않았다.


"일하다가 중간중간 머리 식힐 겸 만화책을 읽는 거, 그거 참 좋겠다! 근데 언제 또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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