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
연애 초반에도 J는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꼬시는(!) 단계에서는 나름 애를 썼지만 만나는 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그의 마음을 안 후에는 전화 횟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해하기까지 나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얼마 전, 연애 6개월 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하는 말은 "내가 이상한 거야?"였다. 이야기인즉슨, 주말 동안 대구 엄마 집에 다녀왔단다. 한데 남자 친구는 자기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탄 그제야 돌아오는 시간을 물었고, 하물며 그 시간에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날 거면 자기가 없는 토요일에 만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자기가 돌아오는 일요일, 하필 그 시간에 만나냐는 것이었다. 이미 기분이 상할 때로 상한 친구는 저녁을 먹자는 남자 친구의 문자에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결국 마지막 문자에 폭발하게 되었다.
'많이 피곤하면 집에서 쉬어도 돼.'
대부분의 남자는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여자 친구는 왜 화가 난 것일까. 그렇기에 연인들은 번번이 싸우게 된다.
- 그녀가 화가 난 이유는 남자 친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주말 내 엄마 집에 간 자신의 빈자리를 남자 친구가 허전해하지 않아 서운했다. 거기에 자신이 돌아오는 시간을 묻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그녀가 혼자 집에 가는 동안 그는 친구를 만났고 집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 그녀에게 '집에서 쉬어도 된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결국 그 모든 것에서 그에게서 '나는 네가 중요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 것이다.
그녀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같은 여자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속상한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이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나는 그가 그녀를 중요하지 않다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는 그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 아마 그는 네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걸. 왜냐하면 그는 정말 모를 수밖에 없거든. 아마 네가 오랜만에 엄마 집에 간 거니까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을 거야. 자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은 거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그래. 언제든 네가 원하는 편한 시간에 오라고 언제 오는지 묻지 않았겠지.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남으니 친구를 만난 거고. 하필 그게 네가 오는 시간과 겹친 거지. 기분이 상한 너의 시큰둥한 반응은 그에게 그저 피곤함으로 인한 짜증 정도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집에서 쉬어도 된다고 말한 거야. 그러니 네 남자 친구는 지금 네가 속상하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않을까.
타인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자 그녀도 수긍을 했다. 남자 친구는 자기가 화난 걸 전혀 모르는 것 같고, 자기가 예민하게 구는 것 같다고. 하지만 본질은 이거다. 그는 결코 그녀에게 무관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서운하고 속상했다는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아마도 사랑의 방식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그는 최대한 그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집에 잘 도착했는지, 언제 돌아올 건지,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그는 그녀의 방식을 '속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녀는 그의 방식을 '무관심'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감정싸움에서 서로의 배려를 쉽게 오해해버리고 만다. 그러니 내가 예민했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말해야 한다. 나를 궁금해해달라고. 나 좀 봐달라고. 나의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말해야 한다.
결혼하고 J와 나는 각자의 쪼잔함의 끝을 보게 되었다. 감정의 골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연인들처럼 싸우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 공간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작고 똥을 싼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은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여러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더라고 이해는 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한다. 솔직하게, 가끔은 과감하게. 결혼을 통해 우리는 환상 속 연인이 아닌 실존하는 부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주 평범하게, 매우 치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