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 떠났다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지우는 시간

by 가현

쉴 새 없이 달린 2018년, J는 회사를 이전했고 나는 카페를 종료했다. 우리는 몇 개월간 주말부부로 살다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벽에 붙여두었던 버킷리스트는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었고 우리는 정말이지, 너무 바쁘게 매일을 보냈다. 이렇다 할 휴가도 없이 달리던 중 J는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3~4일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는데 어딜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바티칸 가기'라고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지금 떠나야 해.


- 이탈리아 가자. 바티칸 가고 싶다고 했잖아?

- 이렇게 짧게 어떻게 바티칸을 가.

- 그럼 어디 가고 싶은데?

- 글쎄.

- 거봐.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잖아. 지금 떠나야 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다가는 영영 못 갈지도 몰라.


J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서둘러 로마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았고 12월 둘째 주 토요일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다른 어느 때보다 저렴했다. J와 일정을 체크해서 7박 9일이라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서둘러 티켓 예매를 하고 나니 시간이 금세 지났다. 천천히 알아보기로 한 숙소와 일정은 떠나기 일주일 전인 지난주에 겨우 예약했고 매일 야근을 하며 녹초가 된 몸으로 하루 전에 짐을 쌌다. 이렇게 까지 해서 떠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는 12시간의 비행시간을 견뎌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지워지는 버킷리스트, 늘어가는 추억

KakaoTalk_20181210_041056221.jpg 에어비앤비 주인과 문자 주고받는 J, 피곤함이 물씬물씬
KakaoTalk_20181210_041118472.jpg Cavour역, 숙소 바로 옆에 레스토랑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해 로마 중심지인 테르미니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지칠 대로 지친 서로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숙소에 도착해 집에서 가져온 즉석밥과 3분 카레, 볶음 김치를 꺼내 먹으니 이곳이 한국의 이태원인지, 이탈리아의 로마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저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무사히 온 우리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의 가장 길었던 비행, 제일 먼 나라로의 여행. 이제 곧 우리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질 것이다. 그저 그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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