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가게가 생겼다
이사를 온 후 남편과 자주 데이트를 즐긴다. 출퇴근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신혼 초에는 체력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주말은 오롯이 쉬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예민했고 날카로웠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더 많은 대출금과 이자를 감당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우리의 삶의 질은 높아졌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출퇴근에 소요되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와 J의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적게는 1시간, 많게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부천에 살 때는 한 사람의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을 넘겼고 심할 때는 3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의 출퇴근 시간을 합친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니 이사를 온 지 반년이 넘은 지금도 자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닐까.
나 오늘 회사 가는데 얼마나 걸렸어?
J 아침에 하나도 안 막혀선 15분밖에 안 걸렸어.
나 와, 대박! 우리 진짜 이사 잘 왔다. 그렇지?
J 응. 완전 만족스러워.
자연스레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늘어 전과 달리 동네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근처에는 시장도 있고 한강공원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맛집과 카페도 많다. 슬렁슬렁 골목을 다니던 우리는 좋아하는 곳을 발견했고 그렇게 하나, 둘 씩 단골가게가 생겼다.
1. 홍제천에서 이어지는 한강
나와 J의 러닝 코스로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 러너와 라이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간단한 체육시설이 있어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뛰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망원 한강공원, 오른쪽으로 가면 난지 한강공원이 있다.
2. 월드컵시장 과일랜드
망원시장에 있는 많은 과일 가게는 저렴하다. 하지만 상태가 일정하지 않아서 믿고 살만한 가게가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월드컵시장에 있는 과일랜드는 다른 과일가게에 비해 가격은 좀 높지만 과일이 항상 신선하고 맛있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가게가 열려있다. 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성실하다.
3. GS편의점
사장님과 직원분이 정말 친절하다. 300m 거리에 또 다른 GS편의점이 그곳도 운영하고 계신다. 출근할 때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사장님과 마주치곤 한다. 정말 열심히 사신다는 생각이 든다. 12월 31일에 맥주를 사 가지고 나오는 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해주시던 게 인상적이었다.
4. 망원시장 삼시세끼
맞벌이 부부에게 반찬 가게가 가까운 건 정말 행운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다듬고 손질해서 만든 수많은 반찬들을 보면 정말 경이롭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꽈리고추찜이다. 가끔 퇴근길에 들러 반찬을 살 때면 사장님이 서비스로 1팩을 더 주신다. 덕분에 나의 요리실력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5. 레이브 에스프레소 바(rave espresso bar)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는 동네 카페로 일단, 커피 맛이 좋다. 로스팅을 직접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추출을 잘하는 카페였다(로스팅도 중요하지만 추출로도 이렇게 맛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중간에 큰 테이블이 있어 완전하게 오픈된 카페이지만 많이 소란하진 않다. 아메리카노는 4,000원인데 T/G일 경우 3,000원이고 타르트와 머핀, 브라우니 등 약간의 베이커리도 준비되어 있다. 종종 원두를 구매하는 에스프레소는 펠트 커피, 싱글 오리진은 썸띵 에스프레소 원두이다.
6. 마포중앙도서관
집과 10분 거리에 있는 마포중앙도서관은 2017년 11월에 개관했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들도 새로 구입해서 깨끗하고 종류도 많아 3, 4층에 걸쳐 자료열람실이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기간행물과 멀티미디어가 비치되어 있다. 음악 CD는 물론 LP도 들을 수도 있는 음악자료 존과 DVD를 볼 수 있는 영상자료 존이 있는데 최대 3명이 함께 볼 수 있는 단체 관람석도 있다. 요즘 매주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7. 망원동내커피 창비점
책을 좋아하기 사람으로서 출판사 1층에 자리한 카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더 좋은 건 커피가 정말 맛있다는 거다. 커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데 망원동 블렌딩은 fresh&light, 서교동 블렌딩은 good&dark 하다. 찾아오는 이들 대부분 책을 읽어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해서 소란하지 않다.
8. ING치킨
치밥의 맛을 알게 해 준 우리 동네 맛집이다. J와 내가 좋아하는 메뉴 조합은 로스트 치킨(8,900), 떡볶이(6,000), 야채샐러드(3,000)이다. 저렴한 데 맛은 그 이상을 훌륭하다. 조만간 포장해서 따릉이 타고 한강 가서 먹어야지!
9. 육회 by 유신
주변의 다른 간판들과 달리 글씨로 '육회'라고 쓰여 있는 것부터 남달랐다. 육회, 육회 초밥, 연어 사시미, 연어초밥, 탄탄면, 한우 떡갈비가 이곳의 메뉴 전부이다. 늘 가볍게 먹을 심산으로 방문하지만 육회를 먹고 탄탄면을 먹은 후 초밥으로 마무리한다. 그렇게 배 터지게 먹어도 5만 원도 안 나오는 마법의 맛집이다.
10. 뚜레쥬르
설 연휴기간 동안 기름진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러닝 후 뚜레쥬르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 컵과일을 먹었는데 속이 편안하고 상쾌했다. 그 이후 매주 토요일 오전에 러닝 후 가는 곳이다. 샐러드는 수요일에만 만들기 때문에 주말에는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토마토, 양상추, 계란 등 재료가 풍성한 B.E.L.T 샌드위치(5,000)가 제일 맛있다.
11. 헤어디자인 모습
단골이었던 샵이 문을 닫은 후 회사 근처인 '헤어디자인 모습'으로 미용실을 옮겼다. 이사를 하면서 나의 추천으로 J도 이곳에서 머리를 자른 후 이제는 나보다 더 자주 머리를 하러 간다. 1호점과 2호점의 거리는 약 320m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1호점에는 남편 대표님, 2호점에는 아내 대표님이 운영하고 있다.
12. 이화약국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는 것 같다. 주일에도 문을 열고 심지어 공휴일인 3.1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약은 구비 되어 있다. 친절하진 않지만 나름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연세 지긋하신 여약사님이 운영하신다.
13. 작은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모티브였을까? 동네 골목에 작은 서점이 늘어나면서 몇 번 찾아가 봤지만 보고 싶은 책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큐레이션 된 책들은 모두 흥미롭다. 시간이 맞지 않아 자주 찾아갈 수는 없지만 쉬는 날 꼭 들르고 싶은 동네 서점이다.
가끔 들르는 곳도 있고 매주 가는 곳도 있지만 저마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가보지 못한 동네 가게들도 많지만 이미 좋아져버린 이 곳들이 오래 오래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싱어송라이터인 오지은 아티스트의 노래에 '서울살이는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라는 가사가 있다. 하지만 둘이 하는 서울살이는 외롭지 않았고 서울 사람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니지, 우리 동네 성산동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서 나는 서울살이가, 성산동살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