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는 연습

호칭보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사이

by 가현

2녀의 막내, 나는 집에서 언제나 철부지 같은 존재였다. 집안의 비협조성을 담당하고 있어서 웬만한 대답은 "안 해." 혹은 "안 가."로 귀결되었다. 그런 내가 J와 결혼을 해 맏며느리가 되었다. 엄마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샐까 늘 노심초사했다.


나 엄마, 나 엄마한테도 전화 자주 안 하잖아. 그래서 어머님한테도 전화 자주 안 해.

엄마 야,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드려야지.

나 전화해서 어머님이랑 무슨 얘기 하지?

엄마 그냥 안부 전화지, 뭐. 그래도 자주 연락드리다 보면 할 얘기도 많아지고 그래.

나 알겠어. 앞으로는 엄마한테 전화할 때 어머님한테 전화드려야겠다.

엄마 나하고 전화 얼마나 자주 한다고. 암튼 어머님한테 전화드려.

나 알았어, 알았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그래도 나 어머님이 말씀하실 때는 "네." 대답도 잘해.'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엄마한테는 툴툴거리는 막내딸이었는데 어머님께 싹싹한 며느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못내 미안했다. 이런 부족한 내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5월 4일, 도련님이 결혼을 하니 말이다.


어머님은 모든 면에서 쿨했지만 딱 하나는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바로 호칭이었다.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지 말 것, 그리고 시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를 것. 나와 J는 동갑이라 말을 편하게 하는데 그럼 이제부터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어머님의 의중은 아들이 높임 받기를 원하셨던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시댁에 가면 J를 'J 씨'라 부른다. 그러니 새로운 가족인 시동생의 아내 역시 동서라고 불러야 한다. 그녀도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겠지.


시간을 내니 추억이 생겼다


몇 주 전 토요일에 시동생이 웨딩촬영을 했다. 별다른 약속이 없었기에 J에게 촬영 스튜디오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썩 내켜하진 않았지만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후 우리는 청담동에 위치한 L스튜디오에 갔다.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예비 신랑과 신부는 어색한 미소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져간 카메라를 꺼내 두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그것이 웨딩 촬영에 간 구경꾼이 해야 할 일이니까.


스물여덟, 연차를 내고 언니의 웨딩 촬영을 따라갔다. 내 역할은 예비 신부인 언니의 도우미이자 보조 촬영기사였다. 촬영한 사진 파일을 받기 전 어떤 느낌으로 사진이 나올지 알려주기 위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사서 고생을 했다- 포토그래퍼 못지않게 사진을 찍었다. 이른 아침 메이크업을 할 때부터 스튜디오에 도착해 촬영을 하는 4~5시간 동안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다. 스튜디오에 있는 그 누구보다 제일 바빴고 힘들었다. 결국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질려 버린 나는 웨딩 촬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스튜디오에 간 건, 실로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J 넌 좋겠다.

나 뭐가?

J 결혼 전에 엄마랑 여행도 다녀오고.

나 그럼 자기도 어머님이랑 같이 여행 다녀와.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J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J의 아쉬운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어머님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느라 가족끼리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J였다. 나는 그에게 가족 간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멋진 슈트 차림을 한 동생의 모습을 보러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제 곧 한 가족이 될 예비 신부와의 첫 추억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KakaoTalk_20190325_213753551.jpg 유쾌한 포토그래퍼가 찍어준 기념사진, 이걸 노렸지!


가족도 연습이 필요하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기에 우리에겐 가족이 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사소한 추억이 하나씩 쌓이다보면 우린 진짜 가족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 내서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 오히려 더 고마웠다.


형님─동서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얼마 후면 서로를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어머님 앞에서 만큼은 반드시 그렇게 불러야 한다. 그러니 어머님 안 보실 때만,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예쁜 그 이름을 마구마구 불러줄 거다. 반가워, 나의 가족 현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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