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시작할 것
우울할 땐 뇌 과학, 앨릭스 코브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받아도 읽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문학과 소설을 좋아하기에 선뜻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책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알게 되었다. 분야가 다르다고 해서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다만 한 사건을 관찰하는 방법이나 표현하는 서술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재미없는 책 이야기에 조금 지루했지만 이내 다양한 시각에 흥미가 생겼다. 덕분에 난 처음으로 뇌 과학 책을 읽게 되었다.
우울증을 단순히 감정의 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울할 땐 뇌 과학』을 읽고 우울증이 생각을 담당하는 전두피질과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전전두피질, 변연계, 선조체, 섬엽 등 뇌의 각 영역에서 대해 설명한다. 읽어도 읽어도 생소한 뇌 영역들은 다행히 전반부에서 마무리되고 후반부에서는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등을 소개했다.
나는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우울증에 걸리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덫에 걸린 것처럼 어느 날 불쑥,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리곤 며칠, 몇 주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책에서는 운동, 목표 세우기, 수면, 좋은 습관 만들기, 바이오피드백, 감사하기, 사람들과 있기 등을 제시했다. 흔한 방법들이었지만 이 활동들이 우울감을 해소하는 정말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가장 남았던 문장은 바로 이거였다.
그만 침대에서 나와라
무엇이든지 그냥, 지금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행위는 둘, 셋, 넷,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이제 그만 침대에서 나오자. 그리고 생각한 것을 한 가지만이라도 해보자. 나는 지금 당장, 저녁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야겠다. 벌써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취미로 드로잉을 배우고 있다. 표지만 보면 자꾸 그리고 싶어 진다. 그럼 그냥 그려버리자!문장 기록
p 5
주의를 집중하거나 의도적으로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거나 분명한 목적을 품고 감정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모든 일이 뇌를 바꾼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 neurolpasticity의 정수다.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을 포함해 사람이 하는 모든 경험은 실제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고 평생에 걸쳐 뇌를 리모델링한다는 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의미하는 바다.
p 13
우울증의 하강 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다시 말해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p 31
우울증 상태일 때도 뇌 자체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특정 신경 회로가 우울 패턴으로 가도록 맞춰졌을 뿐이다. 그것은 뇌가 스트레스, 계획 세우기, 습관, 의사결정 등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그 일들을 담당하는 회로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과 관계가 있다.
p71
불안이 항상 의식적 사고의 요소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배 속이 불편하거나 호흡이 짧아지는 것 같은 단순한 신체 감각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은 경우 사실은 신체가 불안을 표현하는 것이다.
p 109 / 뇌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의식적인 의도에 따라 행위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행위는 충동이나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일로서 특정한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습관이라는 말이다. 우울증 상태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
p 113
우울증 상태에서는 측좌핵에서 도파민 활동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우선 예전에는 즐거웠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둘째로 도파민 활동이 줄어들면 정크푸드, 마약, 도박, 포르노처럼 다량의 도파민이 분비하는 것만이 측좌핵을 움직일 수 있다. 이는 곧 가장 즉각적인 쾌락을 안겨주는 것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며, 대개 이런 행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유익하지 않다. 그나마 충동은 대부분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티 나지 않게 은근히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습관은 주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들이다.
p 115
- 사실 오래된 습관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저 더 강력한 새 습관을 들이면 예전 습관이 약해지는 것뿐이다.
- 안타깝게도 때로 문제는 나쁜 습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있다.
p 146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더 피곤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많아져 다른 재밌는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p 150
인생의 한 시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언제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p 161
대개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다.
p 164
선택하는 단순한 행위가 의식적 기억보다 더 깊숙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p 165
행복에는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처음에 목표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p 171
삶의 어떤 부분에 단호히 결정을 내리면 다른 부분에 대한 결단력도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가 있다.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행하되 거기에 의문을 달지 마라.
p 214
구체적인 방아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아무거나 하나씩 바꿔보라. 거실에 걸린 그림을 바꾼다거나 침실에 페인트를 새로 칠한다거나 가능하면 이사를 하는 것도 괜찮다. 새 직장을 구해보라. 휴가를 가보라.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라. 새 옷을 사보라. 이상한 충고 같지만, 변연계는 환경의 미묘한 신호를 포착하는 일에 아주 능한 데다 선조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변화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어디에 가든 자신의 성향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자신을 바뀌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먼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p 224
찬물 뿌리기 / 얼굴에 갑자기 찬물을 뿌리면 간접적으로 미주신경이 자극되어 심장박동 수가 느려진다. 압도된 느낌을 받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불안하다면 세면기로 가서 두 손 가득 찬물을 받아 얼굴에 뿌려보자.
p 270
온도를 높여라 / 따뜻한 느낌이 옥시토신을 촉진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옥시토신과 비슷한 효과를 내 신뢰와 관대함의 느낌을 강화한다. 그러니 포옹을 할 수 없다면 담요를 둘둘 말거나 뜨거운 찻잔을 잡고 있다. 따뜻하게 샤워하는 것도 좋다.
p 283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우울증 치료 연구에서 완쾌한 사람 중 절반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6주 이상 걸렸다. 그보다 더 오래 걸린 사람도 많았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완쾌했다. 그러니 치료할 때는 끈기를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효과가 없더라도 나중에 불쑥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p 286
'생산적인 꾸물거림'도 행동 활성화 치료를 적용한 방법이다. 매일 샤워를 하거나 매일 침대를 정리하는 것 같은 사소하지만 유용한 과제를 습관적으로 행하게 만드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그런 일을 하는 게 전혀 즐겁지 않더라도, 묵묵히 따라 하다 보면 작은 목표를 이뤄내면서 거기에 따라오는 중립적인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
p 288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방법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좌절감만 더 깊어진다.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을 때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는 걸 인정하기만 해도 그 감정이 떨쳐지는 경우가 많다. 아침 안개가 햇살을 받으면 사라지듯이 말이다.
p 300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감사는 수면의 질을 높이고, 잠은 통증을 줄인다. 통증이 완화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집중하기나 계획 세우기가 잘된다. 집중과 계획 세우기는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고, 결정을 내리면 불안이 줄고 즐거움이 늘어난다. 즐거워지면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이렇게 다시 돌고 돌며 상승 나선의 추진력이 점점 커진다. 즐거운 마음이 들면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릴 가능성이 더 커지고 이 역시 다시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
p 301
우울증이 나선을 그리며 하강 운동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함께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의 작은 변화 몇 가지만으로도 그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 뇌가 상승 나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뇌라는 생태계의 탄력성이 점점 더 좋아져 앞으로 우울증이 생길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