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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Jun 02. 2019

매일 길을 걷는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배우 하정우, 천만 관객 영화의 주연이자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말들. 그래서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설마 책까지 잘 쓰겠어?'


왜 걸을까. 무엇을 위해 걷는 걸까.

주변에서 꽤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추천해주었지만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내 안의 이런 못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그게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찾아간 북카페에 놓여있던 '걷는 사람, 하정우'를 펼친 순간, 나는 하정우라는 사람에게 매료됐다. 그는 글은 간결했고 명확했다. 화려한 수식어나 수려한 글솜씨가 아닌 책 자체가 '하정우'였다. 걸으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이나 경험들을 열심히 써 내려간 그의 글에서 내가 달리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한 부분도 발견했다. 


북카페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지 못했다. 빨리 읽고 싶어 결국 서점에 가서 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 오십 분 걷고 십 분 쉬고, 다시 오십 분을 걸어 일만 보로 하루를 시작하는 하정우. 출근도 걸어서 한다. 그렇게 하루 3만 보를 걷는다. 걷기 위해 하와이에 간 작가는 십만 보 걷기에 도전하고 결국 완주한다. 왜 걸을까. 무엇을 위해 걷는 걸까.

도전하고 행동하고, 묻고 답하며 걸어가는 작가는 단순히 걷는 사람(Walker)이 걷기 생활자(Liver)였다. 매일 걷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는 건강한 하정우가 참 멋있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동네를 걸었다. 작가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걸음이었지만 오랜만의 걷기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달리기와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걷기를 병행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생각도 더 튼튼해지지 않을까.  


2019년 5월 27일 완독. 문장 채취는 파란색 포스트잇 플래그로!


문장 기록

P 8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P 30

나는 이런 불쾌한 기분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면서도 당장의 기분에 지배당하는 삶을 산다. 사실 기분은 인생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의 기분을 바꿀 수 있다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P 58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P 79

하와이에 왔으니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 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P 81

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P118

내가 아는 한 좋은 작품은 좋은 삶에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는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만큼 좋은 삶을 살기도 쉽지 않다. 나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P 155

나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씩 달래고 설득해 일단 누운 자리 밖으로 끌어낸다.


P 228

불안은 내가 한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데서 나오지만, 나는 이미 한번 다 치러본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지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했던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 문제는 감독으로서 세 번째 연출작을 어떻게 찍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영화감독의 일을 임해야 하는가일 뿐이다.


P 231

우리는 실패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타인의 평가가 내 기대에 털끝만큼도 못 미쳐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길게 갈 일'이라고. 그리고 끝내 어떤 식으로든 잘될 것이라고.


P 286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p 291

그저 신이 내게 맡긴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두 다리의 힘만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아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p292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조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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