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중독에 빠진 조직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2026 더다른 관점 #4]

by 더다름 코치

진단기반 팀빌딩 워크숍이 끝난 다음 날, 사무실로 돌아온 팀원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제까지 서로의 강점, MBTI를 맞추며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각자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진단 결과지는 노트 사이 어딘가에 끼워져 있거나 이미 스마트폰 갤러리 속에서 잊혀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팀은 이것저것 진단은 많이하는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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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해의 열풍,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깊은 변화는 혼자 있는 시간이 과거보다 늘어났다는 점이었죠.


강제로 주어진 외롭고 불안한 시간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온라인에는 수많은 자기계발 콘텐츠와 무료 진단 도구들이 넘쳐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단연 MBTI가 있었습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말이 첫 만남의 인사가 될 정도로 MBTI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강점, 버크만, DISC, Big5, 에니어그램까지...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고, 새로운 진단 도구들도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조직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자 리더들은 팀원들의 표정을, 몸짓을, 일하는 방식을 더 이상 직접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대부분 무표정이었고, 서로를 알아가기 어려웠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라는 궁금함을 진단 결과로 성향을 이해했고, 마치 그 사람의 전부인것처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알고 싶다'에서 '조직을 이해하고 싶다'로


2025년 기준으로 OECD 국가 근로자 중 Z세대의 비중은 약 27%에 달하며, MZ세대 전체를 합산하면 조직 구성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합니다.

이들이 팀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면서 조직문화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Z세대의 '사주 열풍'입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사주·점술 시장 규모는 약 1조 4,000억 원에 이르며, MZ세대(10~39세)의 1인당 연평균 지출은 8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타로 자격 발급기관 역시 2022년 65곳에서 2024년에는 105곳으로 늘어났습니다.


2026년에는 K-사주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체험 코스로 부상하며 글로벌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사주를 '미신'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나의 타고난 강점과 결핍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도구'로 받아들입니다.


막연히 미래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성장하는지, 어떤 사람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싶은 욕구, 그 욕구가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와 만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조직 내 진단 도구에 대한 관심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 AI로 인한 급격한 산업 변화, 그리고 '조직문화가 입사와 퇴사를 결정한다'는 구성원들의 명확한 기준.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며 조직문화 진단, 리더십 다면진단, 역량 진단 등 다양한 도구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진단은 넘쳐나는데, 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까


저는 조직 현장에서 강의와 코칭을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자주 드립니다.


"지금까지 받아보신 진단 결과,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대부분의 분들이 웃으며 대답하십니다.

'한 50%? 그냥 재미로 본 것 같아요.'


공식적인 진단을 받는 자리에서도 결과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보는 분은 생각보다 훨씬 드뭅니다.


사실 이런 점들이 강의와 코칭현장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조직의 변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진단을 받는 것보다 진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변화는 달라집니다.



다면진단이 '보고서'로 끝날 때 생기는 일


많은 조직에서 리더십 다면진단을 진행합니다. 상사, 동료, 부하직원, 그리고 리더 자신이 각각 리더의 행동과 스타일을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본인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도구죠.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점수화된 보고서 전달로 마무리됩니다.

리더는 결과를 보며 당황하거나 억울해할 때도 많고, 깊이 생각해보기보다 다음 업무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 저널에 실린 리앤 앳워터(Leanne Atwater)의 연구는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360도 다면진단에서 피드백의 '객관적 정확성'보다, 그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

즉, '수용성'이 리더의 실제 행동 변화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피드백의 정확성보다 수용성이 리더십 개발의 핵심 변수다."

— Leanne Atwater, APA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실제로 제가 코칭으로 만난 한 금융기업의 리더가 있었습니다.

다면진단에서 예상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뒤 코칭을 시작했는데, 첫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내가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팀원들한테 배신당한 느낌이에요."


그 분노와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면진단의 결과는 때로 본인이 예상했던 내용과 정반대이거나 당황스러운 내용으로 수용하기 어려울때가 많다보니 리더는 그때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코칭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 리더는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을 때 팀원들이 이렇게 느꼈을까?' 그 성찰의 순간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코칭 없이 보고서만 받고 지나갔다면, 그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조용히 팀원들을 향한 배신감과 불신으로 쌓였을 것입니다.



조직문화 진단도 마찬가지


조직문화는 사무실 책상 배치나 주차장처럼 눈에 보이는 것부터, 일하는 방식, 의사결정 구조, 암묵적인 규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에드거 샤인(Edgar H. Schein)은 조직문화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한 집단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내부를 통합하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학습하여 공유된 기본 가정(shared basic assumptions)."

— Edgar H. Schein,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2010)


그런데 조직문화 진단 현장에서는 종종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회의가 너무 길다', '팀원들이 수동적이다'

이런 표면적인 증상을 조직문화의 문제로 규정하고, 그 증상이 사라지도록 단편적인 처방을 내립니다.


그러나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뿌리 깊은 가정과 신념이 그대로인 채로는 어떤 프로그램도, 어떤 진단도 조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진단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진단이 의미 없다는 뜻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진단은 훌륭한 도구입니다. 다만 도구는 쓰는 사람의 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망치는 집을 짓는 데도, 부수는 데도 쓰일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확인한 '진단이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었습니다.


첫째, 결과를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의 결과를 보며 '아,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군요'라고 나누는 대화.

그 대화가 나와 타인 이해가 시작되었고, 깊어졌습니다.


둘째, 진단 결과를 정답이 아닌 출발점으로 대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가 아니라

'이 결과를 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라는 질문이 먼저였습니다.


셋째, 진단 결과와 실제 경험이 일치하는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을 함께 살폈습니다.

그 불일치 속에 종종 더 중요한 통찰이 숨어 있었습니다.


결국, 진단 도구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바꿀지 결정하는 것은 거울 앞에 선 사람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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