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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29. 2020

용늪을 아시나요?

청정 생태 산행 1번지, 대암산

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로 유명하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둘러싼 마을 모습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펀치볼(Punchbowl)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곳에서 펀치볼 전투를 비롯하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후 대암산은 오래 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덕분에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습원 지대를 이루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남게 되었다. 


야생화와 산나물이 발길 잡아채는 산

  펀치볼을 닮은 해안마을 남쪽에 우뚝 솟아있는 대암산은 해발 1,310미터로 인근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 산세가 완만하면서 정상에서의 조망이 뛰어나 많은 이들이 산행을 원했지만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관광객 유치를 위해 등산로를 열어달라는 지자체의 청원을 못 이겨 2005년 3월 군(軍)에서 양구군 동면과 남면 일원에 등산로 3개 구간을 개설하면서 산행이 가능해졌다. 

  보통 생태식물원을 기점으로 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데,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만하여 오르는데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속도를 내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산길 곳곳에 바위와 고목,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기막힌 풍광이 자꾸만 눈길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특히 봄철에는 등산로 주변에 피어난 각종 야생화며 산나물들이 발목을 잡아채 걸음이 늦어지기도 한다. 

  하긴 서두를 이유가 무엇인가.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오는 생태식물의 보고를 찾아 떠나는 길인데, 한껏 자연을 즐기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일종의 멋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숱한 들꽃이며 취나물을 비롯해 두릅이며 당귀, 가시오갈피 등 산나물도 지천인데, 재미 삼아 나물을 뜯으면서 올라가도 그만 아닌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휘적휘적 오르다 보면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통신탑이 문뜩 눈앞으로 다가선다. 군용 도로가 뚫려 있는 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기가 막히다. 멀리 동남쪽으로 외설악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사명산, 동북으로는 도솔산과 가칠봉, 그리고 그 너머 금강산도 보인다. 북쪽 산기슭 아래엔 진짜 화채 그릇을 닮은 해안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출입 통제 덕분에 생태계 보고로 남아

  대암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용늪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약 4,000년 전에 형성된 습지로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층습원이라고 한다. 규모 또한 대단하여 큰 용늪의 경우 폭 200여 미터에 길이 300여 미터에 달한다. 여기서 100여 미터를 내려선 곳에 다소 규모가 작은 작은 용늪이 펼쳐져 있는데, 생물 지리학적으로 인근의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독립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용늪에는 세계적으로도 보기가 힘든 연한 자줏빛 금강초롱, 벌레잡이 풀인 끈끈이주걱 등의 희귀 식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생태탐방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용늪을 습지 보존을 위한 람사 국제협약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용늪에 토사가 유입되면서 육지화가 상당히 진척되어 육지에서만 자라는 식물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용늪의 육지화는 람사 국제협약 보존 습지로 지정된 또 하나의 습지인 창녕 우포늪을 연상하고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실망을 안길 수도 있다. 백두산 천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규모의 연못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했을 터이지만, 얼핏 보아서는 용늪 어디에도 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육지화가 아니더라도 용늪은 본래 물이 많은 습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탐방로를 따라 늪 중앙 쪽으로 걸어가면 폭이 7~8미터쯤 되는 연못 2개가 보인다. 물이 매우 차고 먹잇감이 부족하여 물고기가 살지는 못하지만 미생물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일급 생태보전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도롱뇽과 물두꺼비, 개구리 등도 볼 수 있다.


뱀이 많아 돼지 해자를 썼다는 해안마을

  세월이 문득 멈춰버린 것 같은 용늪에서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희귀 식물을 찾아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데, 순수 습원식물 22종을 비롯하여 112종이 서식하고 있다. 대암사초와 산사초, 삿갓사초 등의 사초류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가는오이풀, 왕미꾸리꽝이, 줄풀, 골풀, 달뿌리풀 등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도 늪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끈끈이주걱과 통발 같은 희귀한 식충식물도 있고, 세계적으로 진귀한 금강초롱꽃과 비로용담, 제비동자꽃, 기생꽃을 발견하는 재미도 상큼하다.

  용늪 생태탐방을 마친 후에는 산 아래 분지에 자리 잡은 해안마을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화채 그릇의 바닥에 해당되는 이 마을은 규모가 상당히 큰데,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처음엔 바다 해자, 편안할 안자를 써서 해안(海安)이라 불렀다. 그런데 분지 안에 뱀이 너무 많아 고민하던 주민들이 시제를 지내다가 지나가던 스님의 조언에 따라 바다 해자를 뱀의 천적인 돼지 해(亥) 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지만 해안마을에서는 좀처럼 뱀을 보기 어렵다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대부분 고랭지 채소 등을 경작하는 해안마을 주변에는 안보 관광지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대암산과 마주 선 가칠봉 능선에 자리 잡은 을지전망대와 전망대 오르는 초입에 위치한 제4땅굴이다.


찾아가는 길/

습지보호지역으로 등록된 용늪과 용늪을 품고 있는 대암산을 탐방하려면 양구군과 인제군을 통해 관련기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인 단위로 산행을 하기 어렵게 때문에 안내산악회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양구 해안마을 가는 길은 서울 양양고속도로를 탄 후 동홍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44번 국도를 갈아타는 게 좋다. 홍천, 신남, 양구로 이어지는 길을 타고 가다가 양구읍에서 45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돌산령 터널을 지나 해안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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