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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27. 2020

나의 귀 막힌 사연

듣지 않으면 안 들리게 되는 걸까?

  얼마 전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고 시작되는 소설은 읽어보았지만 그 주인공이 나일 수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진짜 벌레가 된 것은 아니었다. 황당함 측면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사방이 조용했다. 그냥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막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팠다. 또 귓구멍을 막았다 떼었다 했다. 조금 들리는 것 같더니 다시 적막강산이었다.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정말 귀가 막혔나?

  전등불을 켰다. 방은 그대로였다.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안 들릴 뿐이다. 옆자리의 아내는 아직 잠에 빠져 있다. 살짝 흔들어 깨웠다. 이마에 잔주름을 만들며 아내가 살며시 눈을 떴다. 비몽사몽 하던 아내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 좀 이상해. 아무 소리도 안 들려.”

  내 말에 놀란 아내의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황급히 돋보기를 찾아 쓰더니 내 귓속을 살펴본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기도 했다. 이어 먼 동굴 속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귀가 막혔어요. 귀지 때문에. 오른쪽은 조금 괜찮아 보여요.”

  그러고 보니 오른쪽 귀는 조금 들리는 것도 같았다. 다만 왼쪽이 안 들려 덩달아 오른쪽 청력도 떨어진 듯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내도 웃었다. 웃는 모습이 거의 박장대소 급이다. 하지만 내겐 무성영화, 또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주 안 들릴 줄 알았던 세상 소리들이 앵앵대는 모기 소리 같을지언정 들리긴 한다는 것, 완전히 귀가 먹은 건 아니라는 것, 답답하지만 당장 죽을병도 아니라는 것, 창피하지만 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겠다는 것. 얼마나 다행인가.

  아침을 먹고 동네의원을 찾았다. 연달아 북상 중이라는 태풍 소식 때문인지, 코로나 19 때문인지 거리가 한산했다. 

  집 근처에 고만고만한 동네의원이 많은 것도 이럴 땐 유용하다. 번거롭게 차를 끌고 나서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 때나 가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의원 문이 닫혀 있었다. 아니 열긴 했는데 진료를 안 한단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의원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필이면 내가 찾은 이비인후과의원이. 

  근처 다른 의원을 찾았다. 다행히 휴진을 하진 않았지만 전공분야가 아니라 진료를 할 수 없다며 거듭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귀이개나 면봉으로 제거하기엔 귀지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치료를 해주는 의원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 대학병원이 있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고작 귀지를 제거하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고, 막상 찾아가도 의료파업이니 뭐니 하는 시국에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근 이비인후과의원을 검색해 보았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 떨어진 곳에 한 곳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진료가 가능하다며 서둘러 오라고 한다. 버스 타고 가는 게 조금 번거로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료법은 간단했다. 작은 병에 담긴 물약을 귀에 넣어 귀지를 불린 다음 장비를 이용해 흡착하는 방식으로 귀지를 제거한다고 했다. 다만 귀지를 적당한 수준으로 불리려면 계속 물약을 넣어줘야 하고, 적어도 이틀은 귀가 막힌 상태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물약을 받아 나오면서 생각하니 살면서 참 쉬운 일이 없구나 싶었다. 그깟 귀지 때문에 이렇게 불편하다니.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 남의 말 잘 듣지 않았던 게 이런 불상사로 나타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게 어디 나뿐인가. 요즘 세상에 누가 남의 말을 듣는가. 다들 제목소리 내기 바쁜 시대 아닌가. 그런데 왜 나만 귀가 막히고 말았을까. 그냥 우연인가, 너무 게으른 탓인가, 아니면 내가 유난히 남의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섰다.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하나 둘 하차하기 시작했다. 기둥에 테이프로 감아놓은 손세정제를 짜서 손바닥을 문지르며 내려선 거리는 한낮의 열기로 서서히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 일시적인 현상인지, 귀가 막힌 까닭인지, 거리는 여전히 적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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