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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19. 2020

윗세오름의 추억

오름에서 내려옴을 알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위치한 윗세오름은 크고 작은 봉우리 세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어 그렇게 불렸다.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의미다. 제일 위쪽에 있는 큰 오름을 붉은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있는 오름을 누운오름, 아래쪽에 있는 오름을 족은오름이라 한다. 동북쪽으로 한라산 정상과 백록담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남쪽에는 영실계곡이 있다. 


꿩 대신 닭? 천만에

  윗세오름은 서울이나 서삼릉의 경우처럼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굳어진 명칭이다. 수도를 의미했던 서울이나 한양 서쪽 세 개의 능을 지칭했던 서삼릉이 그런 것처럼 크고 작은 오름 세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다는 의미로 붙여졌던 보통명사 윗세오름이 개별적인 대상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이 꼭지를 쓰기 전 잠시 고민했다. 한라산과 분리해 별도 칼럼으로 구성하는 게 옳은가 하는 것이었다. 윗세오름은 해발이 설악산 대청봉(1,708m)과 비슷한 1,700m나 되고 사라오름처럼 한라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지도 않았다. 고유명사로 굳어진 지 오래된 지역이기도 하다. 당연히 따로 소개하는 게 옳다. 

  다만 한라산국립공원 일원에 속해 있는 지역이라는 것, 아울러 등산 애호가나 일반 여행객들로부터 다소 홀대당하는 지역이라는 것이 잠시 발목을 잡았다. 고작 200m 차이밖에 고도차가 안 나는데도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에 비해 윗세오름 산행은 무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이런 경우.

  “기왕에 제주도 왔는데 백록담을 보고 가야지 윗세오름이 뭐냐? 윗세오름이?”

  글쎄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설악산에 갔으면 반드시 대청봉을 찍어야지 소청이나 중청만 찍고 내려와서야 체면이 서냐, 뭐 그런 얘기?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웃도어 제품 제조업체에서 주관하는 명산 순례 인증도 한라산 정상이나 대청봉에서 촬영한 사진만 인정해주니까. 그렇더라도 설악산 울산바위 정도로 취급받는 건 윗세오름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같다. 

  올라본 사람들은 알지만 윗세오름은 동네 뒷동산 수준이 아니다. 제주도에 산재한 무수한 오름 중에서도 가장 높고 산행 난이도 역시 성판악이나 관음사 코스 못지않게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3.7km의 영실-윗세오름 코스도 오르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리고 4.5km인 어리목-윗세오름 코스는 3시간 가까이 잡아야 한다. 

  1994년 남벽 등산로가 붕괴되어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2010년 개방된 돈내코-윗세오름 코스의 경우 거리가 9km로 늘어나고 산행시간도 5시간 이상 걸린다. 등산로 주변이나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한라산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결코 꿩 대신 닭 취급받을 오름이 아니다. 덕분에 오랜 고민 없이 별도 칼럼으로 이 꼭지를 쓰게 되었다. 


오백장군 눈물 덕분에

  나는 2017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윗세오름에 올랐다. 봄에 올랐을 때는 아내와 함께 영실에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짧은 평지 뒤에 이어지는 오르막 등산로가 여간 가파른 게 아니었다. 날씨 또한 변화무쌍해 영실기암 상부에 펼쳐진 평원, 선작지왓까지 오르는 동안 금세 안개가 몰려오고 빗물을 뿌려대다가 다시 맑은 하늘을 드러내며 요동을 쳤다. 

  사나운 날씨 속에서도 가파른 나무계단 너머 펼쳐지는 풍광은 신비로우면서도 사무치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섰다. 날씨가 험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옅은 안개와 가느다란 빗줄기 사이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는 영실기암과 크고 작은 오백장군 바위들, 타원형을 그리며 계곡 아래를 굽어보는 병풍바위 그리고 오백장군 바위에 얽힌 전설까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낳고 살았는데, 흉년이 들어 끼니를 잇기도 힘들게 되자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오라 하고 홀로 죽을 끓이다가 발을 헛디뎌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양식 구하러 나갔던 오백 형제는 돌아와 맛나게 죽을 퍼먹었다. 마지막으로 죽을 푸던 막내의 국자에 사람 뼈가 건져졌다. 순간 막내는 그것이 어머니 뼈임을 알아차렸다. 

  막내는 어머니가 빠져 죽은 줄도 모르고 맛있게 죽을 먹는 형들을 떠나 차귀도에 가서 바위가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울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렇게 변한 바위가 오백장군이다. 아니 막내는 차귀도에 있으니 영실에는 모두 499명의 장군이 있는 셈이다. 

  이들 오백장군의 한이 빗물이 된 것이었을까.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졌다. 아래쪽 화창한 날씨만 믿고 방수 장비를 챙겨 오지 않았던 우리는 쫄딱 비를 맞아야 했다. 재빨리 들고 있던 카메라를 옷가지 사이로 숨겼으나 끝내 카메라가 고장 나고 말았다. 그 사이 빗물이 스며들었는지 처음엔 셔터가 말을 듣지 않더니 끝내 전원마저 나가버렸다. 

  수십 년을 직업여행가의 한 명으로 살아온 내게 여행지에서의 카메라 고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보통의 여행객과 달리 직업여행가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여행을 체험한다.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에 남긴 흔적으로 여행을 기억한다. 궂은 날씨나 바쁜 일정도 이를 막지 못한다. 직업여행가에게 흔적을 남기지 못한 여행은 여행이 아니니까. 일이 아니라 휴식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조차.


천상의 화원에서 

  기나 긴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한라산 특종인 구상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에 서식하는 토종 나무로 1920년 미국 식물학자 A. 헨리 윌슨 박사가 처음 한라산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윌슨 박사가 종자를 반출해 유럽 등지로 퍼져나간 구상나무는 서구에서 최고로 치는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이기도 하다. 

  고도가 높은 지대라 그런지 그리 크지 않은 구상나무 뒤로 서서히 날이 개기 시작했다. 한라산 남벽 조망이 근사하다는 족은오름 아래 노루샘에서 목을 축이고 나무 데크를 따라 걷는 길은 천상의 화원을 걷는 기분이다.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길 양 옆으로 각종 들꽃들이 화사함을 다투고 있다. 그 사이 날은 완전히 개었다. 

  화창하게 날이 개고 아름다운 풍광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데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어느새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우락부락한 근육을 그대로 드러낸 한라산 남벽이 바로 눈앞에 다가서며 반겼다. 눈이 즐겁고 몸도 상쾌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은 여전히 달랠 길이 없다. 

  이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 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온몸이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니 사진을 만들어 가지 않아도 문제 될 건 없지만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직업병의 일종인가, 이젠 멋진 풍경을 봐도 그저 덤덤하다. 아니 멋진 풍광일수록 속이 쓰렸다.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냈지만 이미 알고 있다. 결코 스마트폰 사진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속도 편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초조감에 시달리며 자꾸만 카메라 전원을 켰다 껐다 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의 입가엔 미소가 만발하고 있다. 힘든 오르막이 끝나고 마침내 정상에 섰다는 만족감에 낯빛도 환해 보였다. 남편이 괴로울 줄 알고 있을 텐데 끝내 아는 체를 안 한다. 그깟 사진이 뭐라고, 그냥 영혼에 담아 가면 충분할 것을, 하는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는 듯하다. 하긴 직업병을 앓는 건 나지 아내가 아니니까.

  대피소에서 라면을 시켜 준비해온 김밥과 함께 속을 채우고 하산 길에 나섰다. 어리목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에는 아름다운 봄빛 아래 그림 같은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마음이 아파와 홀로 올라서는 아내를 버려두고 만세동산 전망대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속 좁은 남편이 뿔이 나 내달리는 데도 아내는 무사태평 절경에 취해 있다. 

  사제비동산 샘터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참담한 마음은 여전했다. 이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만 손해지, 스스로 달래다가도 울컥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찔끔 뿌리기도 했다. 다음에는 방수 장비 철저하게 준비해 와야지 다짐하면서도 이럴 것이면 카메라를 망가뜨리지 말든지, 아님 계속 궂은 날씨를 보여주시든 해야지, 괜히 날씨만 좋게 해서. 한라산을 빚었다는 설망대할망을 연실 원망해댔다. 


다시 찾은 윗세오름

  그해 가을 다시 윗세오름을 찾았다. 이번엔 어리목코스로 올랐다. 함께 동행 한 처형에 대한 배려였다. 처형은 평소 트래킹과 등산을 즐기는 편이었으나 아내에 비해 체력이 약했다. 특히 오르막 오르는 걸 힘들어해 가파른 영실코스보다 완만한 어리목코스가 나을 듯했다. 

  한적한 숲 속 연수원 정원처럼 잘 정비된 어리목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굳었던 몸이 풀리면서 컨디션이 좋아졌다. 아내와 처형도 충분히 걸을 만하다는 표정이었다. 날씨 또한 상쾌 경쾌 통쾌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지난봄 고장 났던 카메라를 처분하고 새로 장만한 카메라를 꺼내 단풍이 물들고 있는 풍광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경쾌한 셔터 소리가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입구에서 이어지는 조릿대 숲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어리목교 너머 단풍나무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지체할 순 없다. 이제부터 사제비동산까지 가파르진 않지만 2km가 넘는, 지루한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지는 까닭이다. 단풍 계곡을 향해 연실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아내와 처형의 등을 슬며시 밀며 걸음을 재촉했다.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특히 처형이 힘들어했지만 확실히 영실코스보다는 난이도가 낮다. 지난 20여 년 내내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산과 들을 누볐던 내겐 다소 싱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래서 초보 등산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불리나 보다. 뒤에서 따라오면 더 힘든 것 같으니까 먼저 올라가시라는 처형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척 앞장서 걸었다. 채 1시간도 안 돼 사제비동산 샘터가 나타났다. 지난봄 아내를 기다리며 설문대할망을 원망했던 바로 그곳이다.


단풍과 억새의 향연

  시원한 물을 마시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내에 이어 처형이 도착했다. 샘터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이곳부터 만세동산 전망대를 지나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도 2km 남짓 가야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걷는데 부담이 없었다. 힘들어하던 처형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낮은 계단 주변에 펼쳐진 억새와 형형색색 물든 작은 관목들이 연출하는 색채의 향연에 탄성이 멈춰지지 않았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풍경이 하나 같이 그림이었다. 크게 타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목재 데크길도 한 폭의 추상화 같았다. 지난봄 홧김에 지나쳤던 만세동산 전망대에 올라 한라산 가을 풍경을 온몸으로 호흡했다. 만세동산 일대는 예전에 말과 소를 방목시킨 너른 들판이었던 만큼 눈 맛이 시원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이 멋진 풍광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꿈만 같았다. 그렇게 꿈길 같은 길을 휘적휘적 걸어 우리는 붉은오름 아래 자리 잡은 대피소에 도착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대피소 광장 너머 예의 한라산 남벽이 우렁찬 자태를 드러내며 악수를 건네 왔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영실로 내려서는 길에 족은오름 전망대에 올랐다. 역시 지난봄 그냥 지나친 곳이었다. 나무 계단을 걸어 잠시 올라서니 참으로 장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북쪽으로는 울긋불긋한 평원 너머 한라산 남벽이 우뚝했고 반대편 어리목 방향으로는 끝없는 대평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불쑥불쑥 솟은 오름이 경쾌했다.

  족은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영실매표소로 향하는 길도 기가 막혔다. 주목군락지 끝에서 시작되는 나무계단 양쪽으로 선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난봄 안개와 빗물 때문에 상세히 살피지 못했던 풍경들이었다. 경이로운 기암괴석 사이사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눈길을 잡아챘다. 자칫 선경에 혼을 뺏겨 추락할 수도 있겠다 싶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향기로운 길에 취해 어떻게 내려섰는지 모른 채 하산을 마친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중문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그날 산행이 던져준 감동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짧은 후일담 또는 사족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에 이어 로체와 캉첸중가 위성봉인 로체샤르와 얄룽캉까지 16좌를 완등 한 세계 최초의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떠올랐다. 2000년 K2를 끝으로 14좌를 완등 했으나 1993년의 시샤팡마와 1995년의 로체 등정에 대한 시비가 일자 이듬해인 2001년 두 개 봉에 대한 재등정을 시도, 보란 듯이 성공했다. 

  같은 해 봄철 카메라 고장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다시 윗세오름에 올랐던 나와 엄 대장을 비교하자는 심사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엄홍길 대장과는 촉탁 기자 시절 인터뷰를 위해 두세 번 만났었는데, 산악인답게 성품이 호방하고 인자했다. 마침 나하고는 동갑이라 기자와 인터뷰이 사이를 떠나 좀 더 친숙해지기도 했었다. 그런 인연이 버스 기다리는 동안 엉뚱하게 엄홍길 대장을 떠올리게 했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또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름도 비슷한 엄한길이란 친구인데 안내산악회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처음 그 친구 이름을 들었을 때 혹시 엄홍길 대장하고 먼 친척이라도 되나 했다. 엄 씨가 희성인 데다 이름 또한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니었다. 역시 나와 동갑내기였던 그 친구 이름은 본명이 아니었다. 산행대장을 하면서 하도 엄한 길로 많이 데리고 다녀 붙은 별명이 굳어진 것이었다. 가끔 엄한길 대장이 운영하는 안내산악회에 나가 만날 때마다 이번엔 엄한 데로 이끌지 마소, 하고 놀린다. 언짢을 법도 한데 사람 좋은 엄 대장은 그저 허허 웃고 만다. 그런 면에서는 엄홍길 대장과 많이 닮았다. 


여행 Tip

  영실코스는 3.7km로 거리를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오르는 게 쉽지 않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문 방면(1100 도로) 시외버스 240번을 이용하면 50분 만에 영실매표소에서 내려준다. 여기서 편안한 길을 따라 45분쯤 걸으면 영실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어리목코스 가는 버스 편은 영실 가는 시외버스 240번으로 같다. 제주시외버스 터미널 기준으로 영실보다 가까워 35분이면 어리목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서 내려 10분쯤 걸으면 어리목 탐방로가 나타난다. 버스 편은 제주 버스정보시스템(http://bus.jeju.go.kr)을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064) 713-9950~3 / 영실 지소 064) 747-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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