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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19. 2020

시작이 시작되는 오름

제주여행 1번지, 성산 일출봉

  성산일출봉은 정상 분화구 가장자리가 성벽처럼 보이고, 정상에서 보는 일출이 특히 아름답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서 분출한 화산으로, 원래 섬이었는데 신양해수욕장 쪽에서 쌓인 모래와 자갈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유네스코 3관왕에 등재되었으며 제주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가장 많이 찾는 제주여행 1번지. 해발 고도 182m로 낮은 데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오르는, 제주여행이 시작되는 오름, 오름이 시작되는 오름, 시작이 시작되는 오름, 바로 성산일출봉이다. 


친구 따라 제주여행 

  내가 처음 제주도 여행을 떠난 건 1993년 8월 28일 토요일이었다. 글을 쓰기 전 친구에게 확인해본 것인데, 그 친구 결혼기념일이니까 틀림없을 것이다. 이 날 결혼식을 마친 친구 부부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나와 또 다른 친구 가족이 동행했었다. 어른 여섯에 나와 또 다른 친구의 아이까지 모두 여덟 명이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제주도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우리 셋은 대학 동창인데 젊은 시절 치기에 사로 잡혀 장차 누구든 결혼하게 되면 신혼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약속했었다. 이후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우리는 약속을 지켜냈다. 덕분에 우리는 첫 번째로 결혼한 나의 신혼여행지 대천해수욕장을 필두로 설악산국립공원과 제주도로 세 차례 신혼여행, 아니 정확하게는 동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2020년 7월 제주여행 당시 촬영한 사진. 남자 둘은 신혼여행을 함께 떠났던 벗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인은 아내. 흰 옷 입은 두 여인은 벗들의 아내가 아니고 그냥 후배다.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 일행은 대절한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제주여행 행보에 나선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제주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를 성산일출봉으로 정한 것은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을 먼저 들른 후 해안도로를 따라 중문으로 돌아오는 길에 섭지코지, 성읍 민속마을, 산굼부리, 천지연폭포, 외돌개 등을 둘러보는 것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명소를 방문할 수 있다는 택시기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 우리 일행은 제주도로 떠나기 전 아예 작정을 했었다. 최대한 시간을 아껴서 가능하면 제주도에서 이름난 명소들은 모두 섭렵하고 오기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제주도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식사도 거른 채 보채는 아이들 앞 세워 성산으로 향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중문 숙소에서 서귀포를 지나 성산일출봉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떠오른 후였다.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아침식사도 거른 채 걸음을 서둘렀지만 하절기라 일출시간이 일렀던 까닭이다. 일출은 놓쳤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제주여행 1번지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은 일출이 아니더라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여행 1번지

  실제로 성산일출봉은 제주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이라면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반드시 들렀다 가는 제주도 최고의 명소다. 특히 처음 제주도를 찾은 이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성산일출봉부터 들른다. 여행객 중에서 처음 제주도를 찾았는데 성산일출봉을 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호호백발부터 갓난아기까지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에 실려서라도 일단 찾고 보는 곳이 성산일출봉이다. 

  성산일출봉 입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택시기사가 소개해준 식당부터 찾았다. 그리고 기사가 추천해준 대로 제주 향토음식인 몸국을 주문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해초 모자반을 돼지육수에 넣어 끓여낸 몸국은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이었지만 육지에서 온 우리들 입맛에도 맞았고 간밤의 숙취를 달래줄 해장음식으로도 제격이었다.   

일출봉 오르는 길에 내려다본 성산읍 전경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성산일출봉 등산(?)에 나섰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해발고도도 높지 않고 거리도 짧았지만 당시만 해도 운동하고 담을 쌓고 살던 시절이라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했다.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네 돌도 지나지 않은 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이라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만큼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요즘보다는 덜했겠지만 당시에도 다른 곳에 비해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잘 걸었고, 정상을 향할수록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그림 같아 오히려 힘이 솟는 듯했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서둘러 오를 수도 없었다. 

  당시 내게는 그냥 여행자 외에 다른 임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친구 부부의 전속 사진사였다. 기왕에 익힌 촬영기술로 웨딩 촬영부터 신혼여행 사진까지 찍어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대신 여행경비 일부를 친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그러니 제주도 여행이 그냥 여행은 아니었다. 내겐 업무 반 여행 반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걷다가 경치 구경하다가 사진 찍다가 하다 보니 벌써 등산로를 반 넘게 걸은 후였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등산로 옆으로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는 등경돌이다.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은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하여 매일 옷을 빨았다고 한다. 옷이 단 한 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헤진 데를 꿰매 입었는데, 이때 등경돌에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림 같은 조망

  성산일출봉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서 전개되는 그림 같은 조망으로도 제주여행 1번지라는 이름값을 충분히 하는 곳이다. 전망대나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매표소 주변 푸른 잔디밭과 그 너머 성산읍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는 성산항구 일대와 바다 건너 우도까지 조망되며 좌측으로는 바다와 바다 사이 가늘게 이어진 광치기 해안도로가 아슬아슬하게 육지와 연결시켜 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광치기 해안도로를 보면 이곳 성산일출봉이 화산섬이었다는 게 확연해진다. 

  광치기 해안도로 중간쯤 조수 간만에 따라 길이 끊겨 터진목이라 불린 곳이 있다. 1940년대 들어 도로가 개통되면서 더 이상 물에 잠기는 일이 없어진 이곳은 제주 4·3 항쟁 당시 460여 명의 주민들이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4·3 항쟁은 금기어였기에 우리 일행은 그런 사실을 미처 몰랐었고, 그저 경치 좋다 그림 같은 경치다, 연실 외쳤을 뿐이다. 

  그렇게 슬렁슬렁 정상에 도착하니 분화구가 나타났다. 바다 쪽을 향해 기울어진 거대한 위성안테나 같은 분화구에는 놀랍게도 소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실제로 지름 600m에 면적이 214,400㎡나 되는  분화구 안에서는 한때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성산일출봉 일대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분화구 농사는 금지됐고, 이젠 억새밭이 되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전 우리는 성산일출봉 북쪽 우뭇개 해안에 들러 해녀가 직접 썰어준 해삼을 안주 삼아 가볍게 소주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짊어지고는 못가도 마시곤 갈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우리들이었고, 한창 젊을 때였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해녀의 집에 들러 낮술 한잔 못할까. 

  그러나 오래 지체하긴 어려웠다. 택시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성읍 민속마을 들렀다가 섭지코지, 산굼부리, 쇠소깍, 천지연폭포까지 보고 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서둘러 마지막 잔을 털어 넣고 우적우적 해삼을 씹으며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담

  나의 첫 번째 제주여행이자 첫 번째 성산일출봉 방문은 나와 아내에게는 매우 뜻깊은 여행이었다. 비록 친구 신혼여행을 따라간 것이었지만 비로소 진정한 신혼여행을 떠나왔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전 두 번의 신혼여행은 성에 차지 않는 여행이었다. 

  나는 1988년 10월 9일 한글날 결혼했다. 결혼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신설회사로 이직한 상태였는데,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다. 덕분에 신혼여행을 서울서 가까운 대천해수욕장으로 결정했다. 그것도 1박 2일, 친구들과 동행하는 일정으로.

  당연히 아내는 불만이 많았겠지만 당시 너무 바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라도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정도였다. 정작 문제는 멋진 여행지가 아니라는 것이나 짧은 일정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동행한다는 것도 미리 허락을 받은 것이었으니 아내가 화낼 정도는 아니었다. 

  셋이 쌍을 이뤄 떠났다면 좋았을 텐데, 마침 제주도 신혼여행의 주인공인 친구가 그즈음에 실연을 당한 처지였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라 친구는 혼자서 따라왔는데, 덕분에 신혼여행지에서의 술자리가 자꾸만 길어졌다. 실연당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만 남겨 둔 채 자리를 파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어색한 공기가 짙어지더니 마침내 아내가 먼저 일어나 숙소로 가버렸다. 일생에 한 번뿐인 중대사를 치르느라 피곤한 하루를 보낸 데다 변변치 않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떠나온 것도 서러운데, 역시 한 번뿐인 신혼여행이 남편 친구들과 함께, 그것도 밤늦도록 이어지는 술자리라니, 화가 날만도 했다.

  이듬해 1월 세 쌍이 함께 떠난 설악산 여행은 다른 차원에서 고통스러운 여행이었다. 나의 아내와 갓 결혼한 친구의 아내 모두 임신 중이라 여행을 몹시 힘들어했고 음식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결국 대청봉은커녕 울산바위 한 번 올라가 보지 못하고 그나마 예정했던 3박 4일 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와야 했다. 

  그랬기에 아내와 내겐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이 제대로 즐긴 신혼여행이나 같았다. 사랑하는 친구들, 특히 새로 가족이 된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서 더욱 의미가 컸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이후 아내와 나는 국내외 유명 여행지로 뻔질나게 여행을 다녔지만 태반이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리고 제주에 갈 때마다 성산일출봉을 빼놓지 않고 들리려고 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여행 1번지인 동시에 시작이 시작되었던 내 마음속 오름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Tip

  워낙 유명한 관광명소라 교통편이 많지만 제주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를 오가는 701번(동일주)을 타는 게 편하다. 성산 사무소 앞에 내리면 입구 매표소가 지척이다. 제주터미널 앞 도로에서 급행버스인 111번이나 112번을 타고 스타벅스 성산일출봉점 앞에 내려도 된다. 

  성산일출봉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성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수준이었던 입장료가 2019년 7월 1일부터 성인 5,000원, 청소년이나 군경, 어린이 2,500원으로 인상되었다. 성인 단체는 4,000원, 청소년이나 군경, 어린이 단체는 2,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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