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20250509

by 유태공

눅눅한 장판 냄새에 푸르르 몸을 떨고, 눈은 화들짝, 손발은 움짝달싹 못하고.

타오르는 목마름에 들숨조차 마셔지지 않는 숨막힘,새벽인가, 초저녁인가, 달밤인가.


내 것 같지 않은 다리에 내 것 같지 않은 바지를 찾아입는다.

손을 뻗어 잡히는 내 것들을 챙겨 빨리 나가자,

아리다, 무엇인가 움직여 나를 다시 붙잡을 것 같다.


작은 철문을 찾아 신발을 대충 신고 무언가에게서 달아났다.

꺼진 핸드폰을 켜보지 않는다, 두렵다.


지하철역을 찾아 첫차를 기다리며 먼 창에 비친 미친년의 산발을 정리한다.

주머니에 어제까지만해도 나의 매끈한 볼에 분칠을 해주던 화장품의 거울을 열어본다.


입술도 내것이 아니다, 퉁퉁 부어 닫히지 않고, 뜨겁고 아프다.

눈도 나의 눈이 아니다, 밤새 울었는지 너무 부어 뻐근하다.

세상에,

나의 목은 피멍들로 얼룩졌고, 나의 귀는 상처로 짓니겨졌다.

두려움과 공포감이 집을 찾아 들어갈때까지 아픔을 이기고 있었다.


아직 새벽녘, 집.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기억까지 모조리 벗고 목까지 가릴 수 있는 옷으로 갈아 입는다.

방문이 열리고 밤을 샌, 피가 마른, 물기가 다 빠진,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내 눈빛이 흔들렸음을 들켰다, 엄마는 안다.

엄마가 짐작했음이 느껴졌다, 나는 안다.


문 안쪽 잠금장치를 누르고 문을 닫고 황급히 나가서 아빠의 물음에 답하는 엄마.

누구도 망가진 엄마 딸의 모습을 보지 않도록 꼭 잠그고 나간 문을 한참 바라본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와 난 이날의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언가’와 나의 지인들에게 사실을 말해본 적이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게 된 이유를 말해본 적이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가 침묵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용기내지 못한다.


2005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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