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3
"참 힘들었겠다, 잘 이겨냈다."
십년이 넘도록 나를 옥죄어 오던 가위 눌림에 대한 잔상이
불현듯 진하고, 눅눅하고, 선명하게 떠오르면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생각주머니에 꽉 차서 머릿속에 백만 가닥의 길로 갈라지곤 한다.
장면이 다양하진 않다.
잠이 들면 나타나는 어두운 나무 숲, 도망가도 도망가도 내 앞에 웃으며 나타나는 어린 남자아이.
작은 침대에 나무토막처럼 잠들어 있는 나를, 천장에 두리둥실 떠서 바라보는,
긴머리를 펄럭이는, 시퍼렇게 하얀 한복을 입은 여자.
다음날도 그랬다. 아니 매일 그랬다.
잠이 든 나, 내 앞에 날고 뛰며 나타나는 그 어린 남자아이.
내 몸을 휘감아 누르는 여자.
딱딱하게 굳어서 입도 안벌어지고.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고, 소리나지 않게 엄마를 수 없이 외치면,
너무나 오랜 찰나만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나의 엄마.
무서워 무서워, 엄마 나 무서워.
다 큰 스무살의 나도, 더 큰 서른 살의 나도.
늘 한결 같았던 나의 깊고, 어둡고, 차갑게 홀로 버틴 그 밤들.
밤새 눈 뜨고 서서 잔 것 같은 고통과 잊히지도 잡히지도 않는 존재들의 괴롭힘.
한톨 한톨 새어가며 먹었던 젊고 마른 장작 같은 내 삶을 이어주던 나의 밥 두 숟가락.
불현듯 뜨거워지는 아랫배와 허벅다리, 먹먹하고 슬픈 배앓이와 뒷등에서 발끝까지의 음흉한 전율을
다시금 느끼고자 감은 눈을 뜨지 않고 내 전신을 놓아버렸던 넌, 이름모를 어둠의 지배자.
내 정신이 아닌 메두사 같은 머리 달고 살아온 십수년을,
하루 밤 끝자락이 드디어 생의 마직막인 것처럼 부었던 맛 모르는 술들도,
혀 끝에 독 품고, 마음에 칼 품고 살았던 다 지나간 어여쁜 나의 청춘.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원망의 통곡 계속에서 허우적되며,
삶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지만 이 또한 바라는 대로 되지 않더라.
내 삶의 마지막도 내 것이 아니더라.
내 이 어둑한 고통의 이야기들을 시작부터 부정했던 아버지.
내 이 외로운 싸움의 이야기들을 약으로 다스리려 했던 어머니.
너무했다 싶었는지 찾아오는 밤 손님들은 줄었지만
매일 매일 더 선명해지는 몰래한, 찬란했던 밤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