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르 마시는 여름
신맛은 여름의 맛이다. 냉면 비빔국수 입맛이 없는 여름에 찾게 되는 건 어김없이 입가에 침이 줄줄 고이는 신맛이다. 여기에 차가운 온도가 더해지면, 대문을 나섰던 입맛도 제자리를 찾는다.
누가 나에게 여름에 가장 마시기 좋은 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사이더라 답할 것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힙스터들을 중심으로 크래프트 사이더가 큰 유행을 하고 있다. 얼음을 가득 채운 투명한 유리잔에 사이더를 가득 붓고 마시면 이보다 더 완벽한 여름 음료가 있을까 싶다.
오늘 소개할 쎄시(SASSY)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100% 만들어지는 천연 크래프트 사이더, 프랑스어로 시드르(Cidre)다.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술이다. 과거 사과 발효주는 뜨거운 땡볕에서 마시는 농부의 술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드르를 즐겨 마셨다는 에디터H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의 어느 식당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드르는 좀 더 투박하고, 꼬릿하며 단맛이 강한 맛이라고 한다. 사실 시드르는 본디 투박한 술이 맞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짬을 내어 새참으로 마시던 술이었으니까.
쎄시는 프랑스 노르망디, 샤또 드 쎄시에서 시작해 여러 세대 걸쳐 내려왔다. 영국은 최소 35%이상 미국은 50% 이상의 사과즙을 함유하면 사이더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오직 사과로만 만들어야 시드르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투명한 유리병은 안에 품고 있는 액체를 여과 없이 투명하게 드러낸다.
종류는 세가지. 사이더의 정석, 쎄시 시드르, 사과의 붉은 기운을 그대도 품고 있는 로제, 그리고 배를 단맛이 더한 쁘와흐. 알코올 도수는 차례대로 5.2%, 3%, 2.5%.
사이더의 출신이나 족보 따위는무시해도 좋다. 쎄시는 귀족적인 맛이다. 섬세한 디자인처럼 맛또한 우아하다. 먼저 가장 기본인 맛인 ‘쎄시 시드르 ‘부터 평가해 보자. 상큼한 신맛이다. 우리나라에서 신맛은 자주 단맛과 세트로 따라오긴 하지만, 이건 달지 않다. 대신 사과 발효주 특유의 쿰쿰한 맛이 따라온다. 단맛이 약하니 다른 복합적인 맛들이 섬세하게 피어오른다. 입안에서 쫑알대며 터지는 기포까지. 시드르는 질리지 않고 끝없이 마실 수 있는 여름 술이다.
붉고 탐스럽게 익은 사과의 빛을 담고 있는 시드르 로제는 눈으로 먼저 마시는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인 홍옥을 닮은 맛. 맛이 새초롬 하다. 반면, 배로 맛을 낸 쁘와흐는 조금 더 단아하다. 시드르나 로제 보다는 조금 단맛이 돌고, 알코올 도수는 2.5%로 정숙하다.
뜨거운 여름 도수가 높은 술은 가뜩이나 더운 내 몸을 용광로처럼 달군다. 하릴 없는 일요일 주말, 혹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인 어느 오후엔 쎄시를 마시고 싶다. 그래서 요즘 생각한다. 난 매일 사이다만 마시고 살고 싶다고. 아,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판매처를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