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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10. 2017

뉴욕의 커피를 찾아서

커피 좋아해요? 

여러분 안녕. 나다. 에디터M. 에이치가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 개발자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때 나도 사실 같은 미국에 있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같은 호텔방에 있었다거나 뭐 그런거 아니니까. 우리는 약 4,700km 거리의 미국 서쪽과 동쪽 끝에 있었다. 그녀는 Apple 나는 Big Apple.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이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 뉴욕 비행기 티켓이 들려있더라. 절대로 에이치가 자꾸 해외로 날라서 복수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진짜로. 그냥, 어쩌다 보니 뉴욕에 다녀왔다. 떠나기 전날까지 도착한 당일 날 숙소만 정해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다.


[브루클린 골목에 지치고 길잃은 영혼]

잘 곳도 할 것도 별로 정해진 게 없는 배째라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희미한 계획은 존재했다. 매일 적어도 한 잔씩 뉴욕의 커피를 마시자. 빈속 식후 당 떨어지는 오후, 틈날 때마다 내 위장에 검고 진한 커피를 들이부었다.


[ 뉴욕은 어디나 공사 중. 간간히 스벅도 들르긴 했다]

가고 싶은 카페 리스트가 있긴 해지만, 도장 깨듯 하나씩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은 피하고 싶다. 내가 너무 게으른걸까? 그저 뉴욕 거리를 쏘다니다 아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서 내키는 메뉴를 시켰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빈둥거리다 지겨워지면 남은 커피를 손에 쥔 채 다시 거리를 쏘다녔다. 4박 6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뉴욕 여행기를 한 모금만 먼저 보여주겠다. 대부분 싱겁고 간간히 짭짤하고 고소한 에디터M의 뉴욕 커피 로드 그럼 시작합니다. 뿌뿌!



라 콜롬브 로스터스
(La Colombe Roasters)

이번 여행의 최애 카페. 사흘째에 머문 숙소에서 걸어서 고작 2분 거리에 운좋게도 라 콜롬브가 있었다. 소호지역에 겨우 이틀 머물렀는데 무려 세 번이나 들렀으니 나의 뉴욕 최애 카페라고 말해도 괜찮겠지? 작고 복잡한 다른 지점과 달리 허드슨 스퀘어 지점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한적하고 쾌적하다. 아직은 관광객보다는 로컬 주민들이 들르는 사랑방 같은 곳. 토요일 오전, 잠도 덜 깬 상태로 커피를 마셔야겠다며, 일행을 끌고 어그적대며 카페에 들어섰다.


[어떤 뉴요커가 걸어들어오는데 너무 화보같아서 나도 모르게 찰칵]

라 콜롬브는 1994년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해 지금은 미국 전역에 26개 정도의 지점을 냈다. 맨하튼미드 타운 아래 쪽으로만  벌써 10개 정도의 매장이 있으니 당신이 서있는 곳에서 가까운 매장을 골라 들러보자. 라 콜롬브는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 3의 커피 물결(he Third Wave of Coffee)을 대표하는 로스터리 카페다. 제 3의 커피 물결이라니. 4차 산업 혁명처럼 알듯 말듯 우주의 기운을 담은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어렵진 않다.


제 3의 물결은 인스턴트커피(제1 물결)와 스타벅스 등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의 확산(제2 물결) 다음으로 부는 일종의 ‘흐름’이다. 에스프레소는 짧은 시간동안 강한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캡슐처럼 응축된 맛의 에스프레소는 라떼, 마끼아또 등 다양한 베리에이션 커피 음료를 가능케 했다. 또 스타벅스 같은 공룡 프랜차이즈 기업은 대량생산을 했을 때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강한 로스팅을 통해 맛을 통일하고, 다양한 맛의 원두를 블렌딩했다. 이것이 바로 전세계 어떤 스타벅스에서도 특유의 쓰고 탄맛이 나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이유다. 내 지인은 아무리 낯선 도시에서도 스벅의 커피를 마시면 마음의 안정이 온다고 하더라. 익숙한 내 고향의 맛이라나?


제 3의 물결은 이런 획일적인 커피의 맛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지의 커피의 고유한 맛과 향을 살리는 운동이다. 커피는 포도만큼이나 예민한 작물이다. 같은 곳에서 재배했다고 해도 그해의 기후, 로스팅 정도, 보관 방식, 그리고 추출 방법에 따라 그 맛은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하늘 아래 같은 맛의 커피는 없다. 제 3의 물결은 커피콩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한 가지 산지의 원두(싱글 오리진이라고 한다)를 사용하고, 추출 방식도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핸드 드립이나 푸어 오버(Pour Over)방식을 선호한다.


[화려한 무늬의 컵은 라 콜롬브의 상징이다]

가볍게 떠난 뉴욕 커피 여행이었는데, 너무 말이 길었다. 제 3물결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리고  다시 평화로운 라 콜롬브로 돌아가자. 아침이니까 속을 달랠 겸 나는 라떼를 주문했고, 내 친구는 푸어 오버로 골랐다. 푸어 오버 원두는 샹냥한 바리스타 오빠가 자기의 페이보릿 이라며 강력하게 추천한 ‘아이언맨 비 게이샤(IRONMAN VI GEISHA)’. 가격이 7달러. 다른 커피의 거의 1.5배가 넘는 가격이다. 혹시 내가 관광객이라고 무시하나? 오빠 나한테 눈웃음치며 장사한 거예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성공. 역시 전문가의 말은 경청해야 한다. 나머지 2번의 방문도 모두 이 원두를 다시 맛보기 위해서였으니까.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아이언맨과 게이샤란 근본 없어 보이는 이름처럼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맛의 커피였다. 살구? 복숭아? 화사하면서도 고급진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혀에 전반적으로 도는 가벼운 산미 때문에 입안이 쩍쩍 달라붙는 요망한 맛이었다. 아 쓰면서도 또 마시고 싶다. 엉엉.


라떼도 훌륭했다. 입안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우유와 커피의 조화가 좋아서 어디 하나 비지 않고 꽉 차는 맛이랄까. 높은 천장, 큰 창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조깅 후 들른 뉴요커, 아침 산책 나온 가족 들이 모두 직원들과 활기차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는 기분 좋은 주말 아침 풍경 이었다. 기사를 쓰면서 찾아보니, 우리나라 대학로에 놀랍게도 라 콜롬브 매장이 있더라. 아이언맨 비 게이샤 원두를 맛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뉴욕이 그리워지는 어느날에 그곳에 들러봐야지. 난 자랑스러운 서울러니까.



La COLOMBE Hudson Square
주소: 75 Vandam St, New York, NY 10013
영업시간: MON-FRI 7:30 AM – 6:30 PM
                   SAT-SUN 8:30 AM – 6:30 PM
가격: Latte  $4 / Pour Over(RONMAN VI GEISHA) $7 / Americano $ 3.5





블루스톤 레인
(Bluestone Lane Coffee)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몇 년간 커피 업계에 호주가 유독 많이 언급되는 것을 눈치 챘을 거다. 특히 뉴욕은 요즘 호주 커피 열풍이 거세다. 두 번째로 들른 블루스톤 레인은 그중심에 있다.


일단 커피를 대하는 두나라의 문화는 엄청나게 다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커피는 일종의 ‘약’이다. 아마 다들 익숙할 거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Scene#1.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광란의 밤을 보내느라 잠을 한 숨도 자지 못 했다. Scene#2. 다음 날 아침, 그/그녀는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초췌한 몰골로(분장을 하고) 자기 얼굴 크기 만한 컵에 커피를 가득 부어 마신다. 여기서 커피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제로 인용된다.


반면 호주의 커피 문화는 조금 다르다. 조금만 가면 바다가 보이고 따듯한 햇살이 드는 자연환경은 호주 사람들에게 노천 카페를 선사했다. 호주 사람들에게 주말에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다. 의식을 명징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맛 자체로 즐기는 문화. 놀랍게도 호주는 스타벅스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철수한 전 세계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블루스톤 레인은 이런 호주의 커피문화를 그대로 미국으로 들여왔다. 블루스톤의 모든 매장은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노트북을 보기 보다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와 가족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주문하고 갈곳을 잃은 몸]

내가 갔던 매장은 뉴욕 증권거래소 근처의 아주 작은 매장이었지만, 여기를 제외한 다른 매장은 모두 화사한 화이트와 블루톤의 인테리어에 야외에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다. 맨하튼에만 7개가 넘는 매장이 있으니 되도록 다른 매장에 들러보자.


호주식 아이스 라테(Aussie Iced Latte)는 더블 에스프레소 라테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약간의 코코아 가루를 뿌린 커피다. 일반 라떼보다 분명 묵직한 맛이지만, 뚜껑을 열어 확인하지 않으면 안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갔다고 믿기 힘든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이다. 아이스크림과 커피의 밸런스가 아주 좋더라.


Bluestone Lane
주소 : located in back of building, 30 Broad St, New York, NY 10004
영업시간 : MON-FRI 7:00 AM – 5:30 PM
                   SAT-SUN 8:00 AM – 4:00 PM
가격: Aussie Iced Latte $ 5.25 / Long Black $3 / Flat White $4




그레고리 커피
(Gregorys Coffee)


지금 소개할 곳은 이번 기사에서 유일하게 본 투 비 뉴욕. 진짜 뉴욕에서 태어난 카페다. 춥고 비 오는 뉴욕 거리를 걷다 문득 따듯한 커피가 당겨서 들어간 카페. 어둡지만 어쩐지 따듯하게 느껴지는 매장 인테리어와 무엇보다 뉴욕대 학생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참 친근했다.


[정말 똑같다. 하하하하하하]

무단횡단은 기본이요, 모두 종종 거리며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 거리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갈래?라고 말을 거는 듯한 곳. 나중에 찾아보니, 이 그레고리의 캐릭터는 정말 창업자의 얼굴을 그대로 표현했더라.


내가 누누이 말하고 다니는 세상의 진리. 일단 간판에 창업자의 얼굴이 있으면 그건 두 말할 것 없이 맛집이다. 그레고리 커피도 그랬다. 별 기대 없이 시킨 드립커피는 약한 산미와 부드러운 초콜릿 맛이 균형이 좋았다. 솔직히 먹음직 스럽게 쌓여있는 머핀과 브라우니를 보고 먹을까 말까 엄청난 내적갈등을 겪긴 했지만, 커피 맛이 풍부해서 별 다른 디저트 없이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다. 게다가 2.2달러란 아름다운 가격까지. 이 가격에 이정도 퀄리티의 커피면 아주 훌륭하다. 만약 내가 뉴욕에 살았다면, 아마 난 이 청년과 연애를 하지 않았을까. 뉴욕에 20개가 넘는 매장이 곳곳에 점처럼 박혀 있으니 혹시 이 너드(nerd)한 청년의 얼굴을 마주치거든, 커피를 마셔보자.


Gregorys Coffee
주소: 874 6th Ave, New York, NY 10001
영업시간: MON-FRI 6:00 AM – 8:00 PM
SAT-SUN 7:00 AM – 8:00 PM
가격: Drip Coffee $2.20  / Americano $2.89 / Latte $3.77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스
(Stumptown Coffee Roasters)


스텀프타운 커피는 힙스터의 성지 포틀랜드에서 시작했다. 킨포크, 에이스호텔, 그리고 스텀프타운까지. 이렇게 세 브랜드는 어쩌면 힙스터의 상징이 아닐까.


사실 스텀프 타운은 최고 품질의 원두를 12시간 이상 차가운 물로 추출한 콜드브루 커피로 유명하다. 원두의 품질 관리가 매우 철저하기 때문에 다른곳 로스터리 카페와 달리 뉴욕에도 매장이 단 두곳 뿐이다. 좋은 원두를 사기위해 커피 농장에서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내고, 큰돈을 지불하는 것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내가 간 지점은 에이스 호텔 1층에 위치한 지점. 이곳에서는 커피를 사서 에이스 호텔 일층의 로비를 이용할 수 있어 더욱 더 좋다. 사실 스텀프타운 매장 안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리는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어느 뉴요커 하나 단 한 마디 불평 없이 환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매장의 창가에 서서 커피를 즐기고 있더라.


우리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돈을 지불 할 때 오직 그 음식의 맛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곳을 다시 방문할 지 말 지를 결정할 때 맛 때문 이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곤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각과 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얄팍하다. 사실 우리가 어떤 곳에 느끼는 전체적인 느낌은 그곳에 함께 간 일행의 느낌, 직원의 친절함, 외모와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경우가 더 많다. 입술 피어싱과, 한쪽 팔을 가득채운 타투를 한 언니가 친절한 얼굴로 서빙을 하는 곳. 수다스러운 뉴요커들이 오밀조밀 서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 어두운 에이스 호텔 로비에서 노트북 불빛에 의지해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 하는 사람들. 아아 힙하다 힙해. 스텀프타운은 나의 힙스터 레이더를 마꾸 꿈틀거리게 하는 곳이었다.


솔직히 맛은 잘 모르겠다. 비가 추적추적 오늘 날에 시킨 커피는 깔끔한 맛이었다. 약간의 과일향과 흙내음 그리고 초콜릿 뒷맛으로 마무리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깔끔한 맛이라 내 취향에는 좀 별로. 하지만 넌 멋진 녀석이었어.


[흔한 밥집의 커피jpg. 뉴욕 레스토랑은 모두 짠것처럼 저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줬다. 저 머그컵 갖고 싶다]

뉴욕에 있는 내내 커피를 마셨다. 오늘 소개한 4개의 카페는 사진을 찍었고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으로만 추린 거지만 사실 뉴욕에 있는 내내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셨다. 매일 이만보씩 돌아다닌 건 모두 카페인의 슈퍼 파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카페 문화는 커피의 맛보다는 카페라는 공간 자체에 더 큰 의의를 둔다.  커피는 거들 뿐. 카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으로 일을 하기 위한 곳이다. 지금 이 기사도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 커피와 함께 2시간 째 작성 중이니까. 하지만, 4박 6일 동안 만난 뉴욕의 카페는 조금 달랐다. 다들 즐거운 얼굴로 커피를 즐기고 수다스럽게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은 어떤 도시보다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니까. 이미 스페셜티 커피를하는 곳은 많다. 맛있는 커피는 준비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건 그 커피를 맛있게 즐기는 우리가 아닐까. 일단 나부터 노트북을 덮고 커피에 집중하는 걸로. 그럼 다들 안녕. 나의 커피 로드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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