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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15. 2017

홈팟은 애플의 트로이 목마인가

그들은 '음악'이라고 얘기했다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문창과 출신이라고 했더니, 선배 중 하나가 이런 얘기를 했다. 기자는 ‘아트’하려고 들면 안 된다고. 팩트만 전달해야 한다고. 맞다. 기사는 정확한 사실을 실어 나르는 작업이다. 수다스럽고 사족이 많은 내게 기자의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13일 새벽, A씨가 장충동 족발집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문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팩트다. 기사에 가깝다. 이제 다른 예를 보자. 어떤 글쓰기에서는 같은 풍경을 다르게 그려낸다.


큰 솥에서 구름 같은 김이 솟아올랐다. 양파, 마늘, 생강, 감초, 엄나무… 마지막으로 돼지족을 밀어 넣고 한 시간 반을 더 끓여낸다. 익숙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 집 문턱을 넘게 만드는 그 냄새 말이다. 배부른 사람들이 뼈다귀만 남기고 돌아가는 새벽. 50년 넘게 족발을 삶았다는 식당 앞에서, 동갑내기쯤 되는 A씨의 죽음은 잡내조차 풍기지 못하고 식어 갔다.


어떤 글쓰기에도 옳고 그름은 없다. 방법은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직 사실 만을 전해야 할 때가 있고, 비극에 조명을 쳐서 그림자를 더 깊게 드리워야 할 때도 있다. 이건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WWDC 2017에서 여러 신제품을 발표했다. 그중 단연 많은 눈길을 받은 제품은 애플의 스피커, 홈팟(HomePod)이었다. 키노트 현장에서 홈팟의 데뷔를 지켜본 소감을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디자인은 세련되지만 유니크하진 않았고, 그 자리에 인공지능 스피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곱씹을수록 재밌더라. 애플이 ‘아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리를 품은 스피커. 당연히 아마존 에코나 구글 홈같은 인공지능 스피커와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시장을 선점한 제품이 이미 너무나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뒷북이라고 말했고, 인공지능 비서로서 시리가 미숙한 부분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어쩐지 그것이 알고 싶다 톤이다). 첫째로 애플은 원래 ‘처음’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뒤늦은 축에 속한다. 속된 말로 개X마이웨이라고 하던가. 자기애가 강한 이 브랜드는 제 갈 길만 간다. 16년 전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 세상엔 이미 수많은 뮤직 플레이어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이팟은 다르다”고 여겼다. 애플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시장의 속도에 맞추거나 이미 나온 카테고리의 Me-too 제품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성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브랜딩을 한다.



둘째로, 애플이 홈팟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떠올려보자. “Reinvent home music.”면 아마존은 에코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Always ready. Connected and Fast. Just Ask.” 언제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제품. 똑같은 스마트 스피커지만, 제품을 소개하는 두 기업의 ‘글쓰기’는 판이하다.



애플은 홈팟을 소개하며 이상할 만큼 ‘인공지능’과 ‘시리’를 강조하지 않았다. 음성 제어로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가볍게 짚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오히려 새삼스러울 만큼 스피커 본연의 기능에 집중했다. 음악을 즐기는 기기로서의 성능 말이다. 홈팟 스스로 공간을 인식하고 방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감지해 공간에 맞게 최적의 사운드를 구현한다는 이야기는 마치 마법처럼 들린다. 7인치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스피커가 온 집안을 채우는 풍부한 스피커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애플 뮤직이 가진 취향 훌륭한 플레이리스트가 자리하고 있다.


음악은 애플이 가장 잘하는 일이니, 우리는 음악에 집중하겠다. 이 동그랗고 아름다운 물건은 당신이 집에서 음악을 즐기는 경험을 완전히 바꿔줄 것이다. 얼마나 달콤한 속삭임인가!


기업들이 인공지능 스피커에 핏대를 세우는 이유는, 그 물건이 위치할 장소 때문이다. 다들 우리의 거실을 점거하고 싶어 한다. 그곳에 자신들의 생태계로 유인할 허브를 세우고 “내 구역” 깃발을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음성인식이라는 차세대 인터페이스에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덧입혀 말 한 마디로 온갖 것들이 가능해진다고 호객 행위를 벌인다.



이 상황에 애플은 고고한 척 음악이라는 카드를 빼 든 것이다. 여러분 이게 바로 애플이 만든 스피커에요. 음악은 내 나와바리인 거 다들 알죠? 노래 자주 듣잖아요? 어떤 장르 좋아해요? 잔잔한 그루브가 있는 재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공지능 비서는 멋지지만 여전히 낯설다. 일반 사용자들은 음성 명령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업의 기대 만큼 목 말라 있지 않다.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누구나 음악을 듣는다. 내 말은 흘려 듣는 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신곡에는 귀를 기울인다. 예술은 기술보다 쉽게 마음을 간지럽히는 법이다. 애플은 우리의 거실을 점거하기 위해 음악이라는 트로이 목마에 시리와 홈팟을 탑승시켰다. 얼마나 세련된 브랜딩인가.



홈팟은 절대 음악만을 위한 ‘순수한 머신’일 수 없다. 세상엔 음악 외길을 걸어온 오디오 제조사가 수없이 많고, 공간을 인지해 사운드 튜닝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홈팟이 현재 시중에 나온 스마트 스피커보다 사운드에 더 집중한 제품임은 분명해보인다. 그리고 이건 가격대를 올리기 위한 충분한 명분도 되고 말이다.


애플이 ‘아트’하고 있다. 이 전략이 우리 마음을 잘 만져서 지갑까지 열게 할까? 이제 아이팟 시절만큼 애플의 마법이 통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수다스런 글쟁이인 나는 이런 얄미운 마케팅이 퍽 흥미롭다. 일단은 12월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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