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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Apr 18. 2018

4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PRODUCT) RED

6살까지의 내 인생엔 산타 할아버지가 실존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거실에 나가면 트리 밑에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내용물은 집 근처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서 샀음직 한 뻔한 물건이었지만, 곱게 포장된 박스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짧은 손톱 끝으로 스카치 테이프를 살살 긁어내며 포장을 벗겼다. 6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서른 넘어 많은 일에 무뎌졌지만, 잘 포장된 박스를 뜯는 건 여전히 짜릿하다. 개봉기 못하기로 소문난 에디터H가 오늘만은 조신하게 뜯어봤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 아이폰8 시리즈의 프로덕트 레드 스페셜 에디션이다. 맞다. 껍데기만 바뀐 거. 속알맹이는 아이폰8 그대로다. 그런데도 경건하게 뜯고, 바라보고, 물고, 빨고, 어여뻐한다. 이게 애플이 가진 심란한 매력.



일단 애플이 왜 자꾸 빨간색 아이폰을 만드는지에 대해 복습해보자. 짬날 때마다 설명해드린 것처럼 (RED)는 에이즈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한 글로벌 펀드다. 레드는 여러 브랜드와 손잡고 (PRODUCT) RED를 만든다. 이름처럼 빨강을 입은 물건들이다. 판매금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의 마케팅은 흔해 빠졌지만, 애플이 잘 하는 건 ‘특별한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가장 대담하고 화려한 컬러에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 진열한다. 프로덕트 레드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에이즈 없는 세대를 위한 기부에 동참하게 되는 셈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를 삐딱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애플은 지난 11년 동안 (RED)와의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1억 6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보냈다. 가늠이 안 되는 돈이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임산부의 HIV 바이러스가 태아에게 전이되지 못하도록 하는 치료제를 8억 일 가량 제공할 수 있는 금액이다.



아이폰7에서 처음 출시됐던 ‘빨간 아이폰’이 아이폰8로 대물림됐다. 아쉽게도 아이폰X 버전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폰8이 충분히 좋은 제품이라는 사실도 상기시킬만하다. 아름다운 글래스 바디와 무선 충전, A11 바이오닉칩의 성능까지.



특히 내가 개봉한 제품은 아이폰8 플러스라 인물사진 모드의 특혜 또한 누릴 수 있다. 기념사진 찰칵.



컬러에서 달라진 점은 두 가지. 아이폰7 프로덕트 레드는 입자가 고운 아이섀도를 펴 바른 것 같은 알루미늄 마감이었는데, 아이폰8 프로덕트 레드는 반질반질 빛나는 글래스 마감이다. 그래서 똑같은 레드라도 느낌이 다르다. 빛을 받으면 현란하게 빛나는 광택 덕분에 더 새빨갛게보인다. 딥레드 컬러의 매니큐어를 잔뜩 쏟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쉽게도 이번 레드 아이폰의 자태는 사진으로 담기 힘들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이 느낌을 담을 수 없었다. 사진 속의 컬러는 섭섭할 만큼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어떤 컬러인지 알고 싶다면 에디터H가 숨도 참아가며 만든 개봉기 영상을 보러가자. 딱 1분, 화면만 봐도 직접 박스를 뜯는 것 같은 기분이 들테니까.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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